소통공간

당일폰테크 ‘서부지법 사태’ 1년, 책임자 처벌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당일폰테크 지난해 1월19일 새벽에 벌어진 서울서부지법 폭동사태는 극히 이례적이고 전례 없는 사건이었다. 법원이 윤석열 당시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극우 성향 지지자들은 반대 집회를 넘어 물리적으로 법원을 침탈했고 결국 자신들도 법정에 서게 됐다.
서부지법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1·19 폭동 사건 백서>를 보면 지난해 9월24일까지 100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이 중 95명에 대해 영장이 발부됐다. 경찰과 검찰은 사태 직후 각각 전담팀을 꾸려 구속을 원칙으로 한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했고, 법원도 대부분 청구된 영장을 발부했다.
당시 서부지법에 난입해 기물을 파손한 혐의를 받은 이들 중 총 137명이 기소됐다. 이 중 94명에 대해 1심 선고가 나왔는데 69명이 실형을 받았다. 징역형이 집행유예가 23명, 벌금형은 2명이었다. 2심 재판과 추가 기소 등도 진행 중이다.
이른바 ‘투블럭남’으로 불렸던 심모씨(20)는 1심에서 피고인 중 가장 무거운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사건 당시 경찰관을 폭행하고 깨진 창문을 통해 법원 내부로 침입, 편의점에서 산 라이터로 방화를 시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피고인 중 30대가 47명으로 가장 많았고, 20대가 28명이었다. 이 중 남성은 123명으로 전체 89.78%를 차지했다. 서부지법 폭동사태로 인한 피해액은 4억7857만원으로 집계됐다.
법원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킨 이들뿐 아니라 이들을 선동한 배후로 지목받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도 수사를 받았다. 경찰은 서부지법 폭동사태가 벌어지기 전 다수 집회에서 전 목사가“국민저항권을 발동할 것”이라고 발언한 것에 주목해 수사를 벌였다. 경찰은 전 목사의 발언이 “사법기관을 침입하거나 합법적 절차를 건너뛰어도 된다는 잘못된 관념을 주입한 것”이라고 밝혔다. 특수건조물침입 교사 혐의를 받는 전 목사는 지난 13일 구속됐다.
당시 서부지법에 근무했던 A수석부장판사는 <백서>에서 “대한민국 법치의 상징이 되어 정면으로 공격을 받았다”며 “불타버린 숲처럼 잿더미 위에 서 있던 그 날의 참담함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당시 보안관리대장은 “청사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제게 오랫동안 무거운 죄책감으로 남았다”고 했다.
서부지법 폭동사태에 대한 처벌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치적·사회적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다. 서부지법 폭동사태를 주도했던 극우성향 청년들은 지금도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서부지법 폭동사태와 관련해 기소된 피의자들을 변호하겠다고 나섰던 ‘서부자유변호사협회’는 이후 이 사태를 ‘서부자유항쟁’이라 부르며 1주년 기념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10년 전 베스트셀러 <자존감 수업>으로 대한민국에 자존감 열풍을 불러일으킨 윤홍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10년 후, 여전히 사회에 만연한 아픔을 진단하기 위해 나섰다.
JTBC <이혼숙려캠프>의 자문 의사, 팔로어 8만명 이상을 가진 심리툰 작가 등으로 활동하며 대중과 교감해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에게 경향신문 독자를 향한 새해 마음 덕담을 청했다.
·연결이 우리를 든든하게 합니다
윤홍균 | 윤홍균정신건강의학과 원장·윤홍균마음건강연구소 소장
올해, ‘연결’이라는 단어를 가만히 떠올려봅니다. 저는 매년 1월이면 활기차게 시작했다가도, 연말이면 못한 일만 떠올리며 허탈해하곤 했습니다. ‘결심하면 뭐 해, 어차피 안 될 텐데’ 하는 무력감이 새해의 설렘마저 앗아갔죠. 하지만 계획마저 없으니 문제는 더 복잡해졌습니다. 성취를 해도 기쁘지 않았고, 실패를 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으니까요. “목적지 없는 배에는 순풍도 없다”는 몽테뉴의 말처럼, 글쓰기도 갈피를 잃고 방황했습니다. 올해는 좀 다릅니다. 지난해 찾은 ‘동료’들 덕분입니다. 같은 길을 걷는 정신과 의사들과 모여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마음을 나누니, 스트레스는 풀리고 의욕도 생겼습니다. 자연스럽게 함께 글도 쓰기 시작했고, 올해는 책까지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인류는 생존의 위협에 사람 사이 ‘연결’로 대응하며 진화했습니다. 맹수와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이 살아남은 비결은 마주 보며 표정을 살피고 살을 맞대고 소통하며 집단의 힘을 키운 덕분입니다. 이것이 인류학자 로빈 던바가 강조한 ‘사회적 뇌’ 개념입니다. 디지털 문명이 극도로 발전하고 SNS의 ‘좋아요’ 숫자가 늘어가도 현대인이 여전히 외롭고 불안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실재하는 소속감과 연대감이 충족되지 않으면 우리의 뇌는 이를 생존의 위협으로 여깁니다. 젊은이들이 함께 모여 도심을 달리는 ‘러닝 크루’의 유행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개인화된 세상에 익숙한 이들이 왜 굳이 오프라인으로 나와 함께 숨 가쁘게 달릴까요? 저는 이것이 ‘사회적 뇌’의 본능적인 외침이라고 봅니다. 화면 속 숫자가 아닌, 곁에서 들리는 거친 숨소리와 보폭을 맞추는 ‘연결’만이 뇌의 불안을 잠재우고 진정한 안도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낀다면 불안은 사라지고 충만함이 차차 마음을 든든하게 채우게 될 겁니다. 지치거나 일이 풀리지 않는다면 ‘연결’을 생각해보세요. 새해 분위기가 사라지기 전에 신년 메시지부터 보내보는 거 어떠세요?
·작심삼일 어때서요? 자책 마세요
박진성 | 여수 삼성숲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전지적 의사 시점>으로 네이버 지상최대공모전 우수상 수상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리고 2주가 지났습니다. 저는 올해 하루에 단 500자라도 꾸준히 글을 쓰자는 목표를 세웠는데요, 올해도 쉽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야심 차게 장만한 쓰기 공책은 2쪽에서 멈춰 있고, 이 원고도 마감 전날 밤늦게까지 붙들고 있다가 간신히 보냈음을 고백합니다.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이 저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즘 들어 일과 공부에 집중할 수 없고 일을 미루며 실수를 반복한다고 병원을 찾는 분들이 늘었습니다. 의지 부족으로 자신을 탓하기도 하고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검사를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스레 묻기도 합니다. 그런데 차근히 면담해보면 누적된 과로와 번아웃으로 지쳐 있는 상태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미 짊어진 짐이 무거운데 새해 결심이라는 새로운 무게가 더해진 것이지요. 매년 발표되는 새해 소망 설문조사를 보면 놀랍도록 내용이 비슷합니다. 작년에 이루지 못했던 ‘원대한 목표’들이 고스란히 이월된 것이겠지요. 새해에는 작심삼일 했다며 자신을 탓하기보다 그저 행복한 ‘오늘’이 있었으면 합니다. 1월17일 토요일 밤을 즐겁게 보낼 반짝반짝한 계획이 독자님들의 마음속에 떠오르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행운’말고 일상의 ‘행복’ 찾으세요
하주원 | 서울 연세숲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는 법> 출간
새해가 되면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시라 서로에게 덕담합니다. 그러나 다 이루어지는 해는 없었습니다. 도박, 주식, 코인으로 큰 성공을 꿈꾸기도 하지만 인생에서 계획대로 되는 것은 없지요. 도박, 투자 중독자 중에는 처음에 크게 따는 행운을 겪었기 때문에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당시에는 행운인 줄 알았는데, 비극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반대로 당장의 불운이 우리 삶의 새로운 교훈과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첫 느낌과 달리 겪어보니 좋은 사람도 있고, 마음에 안 드는 회사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예도 있습니다.
미래는 누구에게나 두렵고, 불행해져도 괜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드문 행운을 목 빠지게 기다리며 살 수는 없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잘 살기는 누구에게나 쉽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잘 이겨내는 것이 진짜 강한 사람입니다. 삶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보다 일어난 일을 어떻게 대하느냐, 그 태도가 어쩌면 더 중요합니다. 바라던 길로 가지 못하더라도, 그 길 위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고 뜻밖에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행복을 찾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후회스런 오늘도 그리움이 됩니다
이두형 | 이두형정신건강의학과 원장·두마음연구소 대표, <그냥 좀 괜찮아지고 싶을 때> 출간
10년 전에는 어떤 장면 속에 계셨나요. 저는 한참 사회생활의 쓴맛을 보며 자기혐오에 빠져 있었습니다. 일이나 관계가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자신의 무능을 절감하고 미래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니 그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실패한 일이나 놓친 관계 같은 것이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진탕 마신 술이 깨지 않아 아침 해변에 벌렁 누웠을 때 비쳐오던 어스름한 햇살, 카페에서 일하는 친구의 어깨너머로 배워 처음 내려 마신 커피의 맹맹함 같은 것이 떠오릅니다. 삶의 무게를 인정하고 차근히 살아낼 때 모을 수 있는 소중한 조각들입니다.
살면서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좋은 일이 있다고 하여 내가 다 잘해서가 아니고, 잘못된 일이 있다고 하여 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하거나 무리하거나 서툴렀던 것은 단지 때가 아니고 인연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아쉬움과 후회 가득한 한 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믿습니다. 당신이 살아낸 만큼 ‘당신의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그리고 후에 그리워할 무언가가 기억 속에 쌓였다는 것을. 저도 당신도 다시, 충분히 살아내는 2026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도파민 중독, 독서로 끊으세요
박종석 | 서울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이혼숙려캠프> 자문의사 출연
OTT, 유튜브 속 자극적인 콘텐츠의 유행을 보면서 사람들의 심각한 도파민 중독 상태를 느낍니다. 요약 영상도 모자라 쇼츠와 릴스를 찾는 이들에게 인내심과 깊은 숙고란 답답한 얘기일 뿐, 오직 뇌의 보상 중추인 측좌핵의 도파민을 자극할 수 있는 강렬한 유혹이 최우선순위가 된 지 오래입니다. 저는 2026년 마음 건강의 핵심 주제를 도파민 중독과 포모 증후군, 성인 ADHD로 꼽습니다. 세계에서 인터넷이 가장 빠른 나라, 타인의 욕망을 좇느라 숨이 차 나를 잃어버리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남과 나를 비교하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존감을 잃어버립니다. 마음을 채울 것을 찾아 짧은 쾌감에 몰두하고, 자연히 집중력은 떨어집니다.
이런 사회에서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자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마음속에 어떤 불안과 욕망, 두려움과 분노 등이 숨어 있는지 짚어보아야 합니다. 가장 쉽고 현명한 방법은 바로 독서입니다. 동서고금은 물론 인류 역사를 통틀어도 나 자신을 깨닫는 정답은 항상 독서였습니다. 도파민 중독 시대에 마음 건강에 대한 책이라니요. 하지만 새해에 한 번쯤 즐겨주십사 부탁드려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당신을 위해서요.
·더 바라기보다 ‘무탈’한 한 해를
지민아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엄마는 괜찮을 줄 알았어> 출간
새해가 되면 우리는 익숙한 인사들을 건넵니다. 복 많이 받으라는 말, 건강하라는 말, 무탈하라는 말입니다. 요즘은 그중에서도 ‘무탈’이라는 말이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흔히는 나쁜 일 없게 해달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지만, 이 인사에는 이미 지난 시간에 대한 고백이 함께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한 해를 지나는 동안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있었고, 잘해보려 애쓰다 뜻대로 되지 않았던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넘겨야 했던 마음들도 있었겠지요. 돌아보면 아무 일도 없던 해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은, 그 시간을 나름의 방식으로 견뎌왔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많은 일을 겪어온 뒤에는 무언가를 더 바라기보다 무사히 지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는 것 같습니다.
새해에도 우리는 서로에게 무탈하길 바란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 말속에 이미 충분히 애써오며 여기까지 왔다는 인정이 함께 담긴다면, 그 인사 하나로도 새해의 시작은 이미 충분해 보입니다.
새해에는, 부디 무탈하세요.
·변화에 대한 공포, ‘나’를 알면 줄어요
배승민 | 가천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주임교수, <내 아이가 보내는 SOS> 출간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과학이 지구 너머 우주로 나아가는 시대, AI가 인간을 뛰어넘는 시대, 과학과 이성이 인류 역사 그 어느 때보다 빛나는 시대이지만 그만큼 사이비 종교, 전쟁과 폭력의 아픔 역시 동전의 양면처럼 첨예하게 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예측하지 못하는 것, 대비할 수 없는 것에 지나친 공포를 느낍니다. 공포와 불안은 마음 깊이 새겨지고, 그러다 보니 요즘은 정신질환에 대한 주관적인 자가진단이나 ‘너 때문에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며 갑론을박하는 갈등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삶은 날씨와도 같아서, 언제나 맑기를 바라지만 당연히 궂은날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과거와 현재의 자신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 아픈 마음들을 살펴온 여러 정신건강 전문가의 조언으로 마음 건강의 내일을 헤아려보는 일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올해는 몸과 마음의 체력을 키우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을 비난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궂은날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우리 모두의 ‘맑은 날’을 기대합니다.
·일상 리듬 통해 조금 더 ‘버텨내기’
차승민 | 아몬드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 출간
2025년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불경기라 힘들다는 이야기에, 전 세계적으로 사건 사고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한편 신기술의 등장으로 사회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지요. 이런 빠른 변화의 파고 속에서 개인들이 겪는 불안의 크기도 커져가는 듯합니다. 점쟁이는 아니지만 2026년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모두가 함께 불안 사회를 살아가는 것이지요.
불안은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때 더욱 커집니다.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고 상황에 대응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쌓이다 보면 포기하고 싶어지고 무기력해지기도 합니다. 무언가 꾸준히 해보겠다는 마음조차 들지 않고, 마음의 공허함을 짧은 호흡의 자극으로 채우는 일상이 반복됩니다.
공허감과 중독. 이것이 어쩌면 2026년 우리 사회 마음 건강의 화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핵심은 균형과 조절입니다. 무너진 마음을 단번에 바꿀 수는 없지만, 어려운 하루를 조금 더 버텨낼 수 있도록 조절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만의 일상 리듬을 회복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를 단단히 만들어가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2026년은 모두가 조금 더 잘 버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증 정신질환자 지원 탄탄한 사회로
장광호 | 인스타그램 심리툰 ‘팔호광장(@palhosquare)’ 연재, <알고 싶니 마음, 심리툰> 출간
중증 정신질환자를 주로 진료하는 폐쇄병동이 있는 병원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몇분의 환자를 잃은 적이 있습니다. 환자분이 돌아가셨던 무렵의 날씨가 되면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병원 밖을 하염없이 서성이던 날이 어김없이 떠오릅니다. 환자의 사망은 의사가 겪는 숙명 같은 것이겠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중에 자살이나 정신증적 증상으로 인한 사고로 돌아가시는 분을 경험하면 유독 여러 순간이 후회로 남습니다.
특히 제도적인 문제나 병상 부족 등 시스템의 문제로 인해 어떤 방법으로도 적극적인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없었던 분이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가시게 되면 그 참담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적절히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를 생업을 포기해가면서 돌봐야만 하는 가족들의 하소연과 절규도 현장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괴로움입니다. 자살률이 높을수록 자살 고위험군인 자살 유족과 지인이 더 많아집니다.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시스템과 제도 정비를 서둘러야 합니다. 신속한 중증정신응급 대응을 위해 특히 상급종합병원의 폐쇄병동이 유지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새해에는 현장의 목소리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정책들이 좀 더 입안되고 시행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윤홍균 원장과 ‘글 쓰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회(글정회)’ 소속 여덟 명의 의사가 의기투합해 우울, 분노, 무기력, 스몰 트라우마, 관계 갈등으로 마음고생하는 이들을 위한 조언을 담은 <마음 예보>(흐름출판)를 펴냈다.
한 차례의 광풍이 지나가고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산단) 호남 이전’이라는 광풍이다. 일단은 지난 8일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 발표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김 대변인은 이날 대통령·수석보좌관 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클러스터 이전은 검토하지 않은 상황이고, (반도체)기업 이전은 기업이 판단해야 할 몫”이라고 밝혔다. 당연한 얘기지만 더 늦지 않게 발표한 게 다행이다.
이렇듯 논란거리도 안 될 일이 광풍으로 돌변한 진원지는 전력 공급을 책임지는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의 발언이었다. 김 장관은 지난달 26일 CBS라디오에서 진행한 <경제연구실> 인터뷰에서 “용인에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입주하면 두 기업이 쓸 전기의 총량이 원전 15기, 15GW 수준이라 꼭 거기에 있어야 할지, 지금이라도 지역으로, 전기가 많은 쪽으로 옮겨야 되는 건 아닌지 고민이 있다”고 했다. 이 발언은 사전에 의도된 발언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김 장관의 이날 발언은 두 가지 점에서 문제적이다. 첫째는 그가 전기사업법에 의해 전기 공급을 독점적으로 수행하는 기관의 최종 책임자라는 점이다. 즉, 전기 공급의 법적 책임을 진 장관이 책임 이행보다 책임 회피성 발언을 했다는 점이다. 더구나 대규모 송전 건설을 지원하고자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2025년 2월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산단 관련 절차와 결정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부, 재정경제부의 일이라는 점이다. 기후부의 역할은 인허가 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를 담당한다. 즉 산단 ‘이전’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기후부 장관의 역할이 아니다.
호남권, 초고압직류송전 구축 필수
이번 발언이 광풍으로 이어진 근원적인 이유는 재생에너지와 에너지고속도로에 대한 오해다. 김 장관의 발언이 있기 전부터 호남권에서는 재생에너지를 근거로 반도체 산단의 호남 이전을 요구하고 있었고, 구체적으로는 재생에너지를 100% 공급하는 ‘RE100 산단’을 제시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수도권으로의 초고압직류송전(HVDC)에 반대하는 의견도 같이 표출됐다.
이 지점에서 재생에너지에 대한 이해 부족이 드러난다. 재생에너지 보급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HVDC 구축이 필수적이다. 전국에서 생산된 전기가 실시간으로 순환돼야 각지의 입지 조건에 맞춰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이동하고, 전력 생산 효율도 높아질 수 있다. 이러한 ‘순환 체계’가 이재명 대통령의 에너지 정책 트레이드마크인 ‘에너지고속도로’다.
재생에너지는 지역 편재성과 기후에 따른 간헐성·변동성을 특징으로 한다. 전기는 한 순간에라도 ‘수요=공급’이 일치해야 하기에 재생에너지는 계통안정화를 위한 추가적인 설비를 필요로 한다. 재생에너지 산지를 경유하는 신규 송전망, 양수발전, 에너지저장배터리(BESS)는 물론이고 비상용 LNG가스 발전이나 전력 수요 반응(DR) 체계 등이 큰 폭으로 증가하게 된다.
작년 말 2035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발표하면서 정부는 2035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기존 2038년 29.2%(제11차 전력수급계획)에서 2035년 37%로 대폭 높였다. 또한 2030 NDC 달성을 위해 재생에너지 설비 공급 목표를 2024년까지의 누적 설비용량 34GW보다 크게 증가한 2030년까지 100GW로 설정했다. 따라서 HVDC를 포함한 계통안정화 투자는 더욱 시급해졌다.
특히 호남권의 경우 재생에너지는 지금도 신규 허가는 2032년 계통 접속을 조건으로 해줄 정도로 적체 현상이 심각한 상태다. 결국 HVDC가 빨리 개통돼야 추가로 예정된 태양광·해상풍력 발전도 가능해진다. RE100 산단을 만들어 호남에서 다 소비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재생에너지 특성상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고 또 비효율적이다. 우선적으로는 전력 소비가 큰 수도권과 연결되어 전기를 실시간으로 순환시켜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바람연금·햇빛연금 역시 전력 수요 부족으로 실패한 정책으로 귀결될 것이다.
RE100 산단, 분산특구와 상충도
재생에너지에 대한 오해는 RE100 산단 특별법 논의에서도 드러난다. RE100 달성은 기업의 위치보다도 재생에너지 가격과 관련 제도가 훨씬 중요하다. 기업은 전국 어디에 있더라도 재생에너지크레디트(REC) 제도를 활용해 RE100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발의된 RE100 산단 특별법안(김원이 의원 안)은 특정 재생에너지 사업자가 단독으로 RE100 산단에 전력을 공급하도록 독점권을 부여하고, 전기가 부족할 때는 한전이 공급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다.
이 경우 산단에 입주한 기업은 REC나 직접전기구매계약(PPA) 같은 효율적인 RE100 달성 수단을 포기하고 사실상 정부가 정해주는 재생에너지 사업자에 크게 의존하는 ‘에너지 을’이 될 수밖에 없다. RE100 산단 유치를 위해 기업에 인센티브를 더 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에너지 족쇄를 채우는 격이다.
RE100 산단의 또 다른 문제점은 재생에너지 지산지소(地産地消)를 목적으로 하는 분산에너지특별법의 분산에너지특구와 상충된다는 점이다. 분산특구 내에서는 재생에너지 발전자와 사용자가 한전에는 송배전료만 부담하고 직거래가 가능하다. 이미 분산특구는 7곳이 지정되었고 요건만 충족하면 추가로 지정이 가능하다. 여기서는 다수의 전기 공급자와 수요자가 경쟁입찰을 하므로 RE100 산단보다 오히려 RE100 달성이 쉽고 가격도 저렴할 수 있다.
경위가 어떻게 되었든 이번에 몰아친 용인 반도체 산단 이전 광풍은 우리 사회에 잠복해 있는 사회적·경제적·정치적 갈등 요소를 한꺼번에 분출시켰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오해가 켜켜이 쌓여 있던 차에 장관의 세심하지 못한 발언이 불씨가 되었다.
이렇게 잠복되어 있는 갈등 요소를 지혜롭게 해소하지 못하면 새로운 갈등이 언제든지 또 다른 불씨에 의해 재발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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