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공간
CCMMR사이트 [현장]전단지·캔 모아 생계 꾸리는 70대 노인의 저녁···“비가 와도, 무더위에도 못 쉬어”
- 이길중
- 25-08-05
- 1 회
이날 서울 전역에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져 있었다. A씨는 매일 저녁 7시쯤 나와 일을 시작해 새벽까지 밖에 있다고 했다. 불법 전단지를 수거하는 일은 3년 전부터 시작했다. A씨는 비가 오던 지난 3일에도 우비를 쓰고 나와 전단지를 모았다.
마포구청은 불법 광고물 ‘주민 수거 보상제’를 운영하고 있다. 일반 전단지를 모아 오면 장당 20원을 주고, 청소년 유해물은 장당 40원을 지급한다. 이날 A씨는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약 300장의 전단지를 수거했다. 3시간 일해서 번 돈은 총 1만원이 안 됐다.
A씨는 동네 PC방 등에서 나오는 캔도 수거한다. 이날도 PC방에서 받아 온 유리병·캔류를 바닥에 쏟아 놓고 분리했다. 그는 “알루미늄 캔은 1㎏당 받을 수 있는 금액이 1000원정도 밖에 안 된다”며 “전단지가 고수익”이라고 말했다. A씨는 자신처럼 전단지를 수거하는 일을 하는 노인은 마포구 성산1동 내에만 4명이라고 했다.
폭염이어도, 비가 와도 A씨가 일을 쉴 수 없다. 가족 중 A씨만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자와는 오래전 사별했다. 두 아들 중 첫째는 집을 담보로 빚을 내 사업을 하다가 실패했다. A씨는 “첫째 아들은 매일 집에서 누워만 있다”고 했다. 둘째는 대학을 다니던 시절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2023년 처분가능소득 기준 38.2%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편이다. 2023년 보건복지부의 실태조사 결과 폐지수집 노인 규모는 약 4만2000명으로 추계됐다. 평균 연령은 76세로, 하루 5시간 이상, 일주일에 평균 6일 폐지 수집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A씨는 이날 전단지를 수거하다가 어깨를 부여잡고 주저앉은 채 눈물을 글썽였다. 두 차례 목 디스크 수술에도 사라지지 않는 통증 탓이었다. 그는 “한 번 통증이 오면 머리끝까지 찌릿해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며 “그래도 일주일에 5000장은 모아야 하는데 큰일”이라고 말했다. A씨는 굽은 허리로 보행기에 의지해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길거리에 떨어진 전단지를 찾았다.
교육부에 장관이 없고, 대통령실에 교육비서관이 없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지 2개월이 지났지만 교육정책의 핵심 자리들이 공석이다. 그 와중에 교육부의 ‘3대 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의대생 집단휴학,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 고교학점제 가운데 두 가지는 가닥이 잡혀간다. 의대생들은 학업에 복귀하고 있고, AIDT는 법적 지위가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격하됐다. 하지만 고교학점제는 오리무중이다.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은데, 장관도 비서관도 없으니 정부가 기민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의대 문제나 AIDT처럼 ‘윤석열 정부 탓’을 하기도 곤란하다. 고교학점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책임자가 부재중이고 야당 탓만 하기도 어려우니, 적당히 분칠하고 문제를 덮는 미봉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고교학점제의 문제는 무엇인가? 가장 거시적인 문제는 5월26일자 칼럼(‘경계선 지능을 위한 고교학점제’)에서 소개했다. 인문계(아카데믹) 고교의 교육과정이 적성에 맞지 않는 학생들이 대거 인문계고(일반고) 교실에 앉아 있게 된 오랜 적폐의 과정이다. 이것은 산업정책의 약화(직업계고를 위축시킨), 미국 교육이론의 득세(고교-대학 간 연계보다 자율을 강조하는), 독재정권에서 시작된 인기 영합 정책(출석일수만 채우면 고교 졸업장을 주는) 등이 겹쳐서 일어난 참사다. 하지만 이런 원론적인 수준의 문제와 별개로 현장 교사들이 체감하는 문제들이 있고, 이에 대한 개선책이 존재한다.
첫째, 출결 관리의 어려움이다. 출석 체크를 과목별로 매 시간 해야 한다. 과목별 시간의 3분의 2 이상 출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담임교사와 과목교사가 사실상 중복된 출결 업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특히 과목교사는 매 시간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결석 사유까지 파악해 입력해야 한다. 이로 인한 교사들의 피로감과 수업시간 결손이 심각하다. 이에 대해선 단기적으로 과목별 출결 대신 일별 출결만 기록하는 기존의 방식(현재 고2, 고3에 남아 있는)으로 환원함과 동시에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생체정보나 학생증을 이용한 출석 등록 앱 또는 기기를 보급하는 대책이 가능하다.
둘째, 최소성취수준 보장지도(최성보)의 문제다. 고교학점제하에서는 과목별 성적이 100점 만점에 40점 미만이 되면 학점 F에 해당하여 ‘미이수’가 된다. 말하자면 낙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수십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사라졌던 낙제를 다시 도입하자니 여러 가지 부작용이 우려되었다. 그러자 정부는 최소성취도를 보장하기 위한 활동을 ‘최성보’라는 이름으로 교과교사의 의무로 부과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수포자’여서 방정식의 기초도 모르는 학생에게 이차방정식의 판별식을 이해시키라니? 선진국 어디를 봐도 고교에서 이러한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가 없다. 최소성취도를 ‘보장’하는 것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즉 의무교육 단계에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교육 수장 부재 속 미봉책 우려 높아
예를 들어 핀란드는 9년간의 의무교육 기간에 방과후 보충교육이 이뤄지며, 보충교육에도 최소성취도에 미달하면 심지어 초등학생도 유급시킨다. 하지만 이미 의무교육을 벗어난 고교에서는 최소성취도를 ‘보장’하지 않는다. 불가능하기도 하고 불필요하기도 하다. 단기적으로 40점의 이수·미이수 기준을 폐지하고, 중장기적으로 이수 또는 졸업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를 원점에서 토론함과 아울러 최대한 이른 시일 내로 AI를 튜터로 활용하는 최소성취기준 ‘지원’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셋째, 혼란스러운 교육과정에서 비롯된 폐해다. 올해 고1부터 도입되는 2022 교육과정은 과목들을 공통·일반선택·진로선택(과거 심화선택)으로 분류하던 것을 더욱 세분해 공통·일반선택·진로선택·융합선택 등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세 가지로 나누는 것도 희한한데 네 가지로 분류군을 늘렸다. 게다가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이른바 ‘과목 쪼개기’가 더욱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았다. 예를 들어 과거 고2, 고3 때 배우던 수학 내용은 무려 다섯 과목(대수·미적분1·확률과통계·미적분2·기하)으로 쪼개져 있다. 또 화학2를 ‘물질과 에너지’ ‘화학반응의 세계’로 나누는 등 직전 교육과정까지 멀쩡하게 있던 사회나 과학 과목들도 쪼개어놓았다.
고교학점제가 오래전부터 정착된 영국의 경우 대부분의 고등학교(한국의 고2~3)에서 제공하는 수학 과목은 ‘수학’과 ‘심화수학’ 단 두 가지다. 이것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극심한 ‘과목 쪼개기’는 선택과목이 유난히 분절돼 있는 미국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이는데, 미국도 수학은 쪼개놨을지언정 과학이나 사회 과목은 나눠놓지 않았다. 단기적으로는 2~3과목씩 통합운영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고, 중장기적으로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교육과정을 대폭 정리해야 한다.
넷째, 교사가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국의 대부분 공립학교에서는 교사가 어떤 학년·과목을 가르칠지를 신학년 되기 2주일쯤 전에야 알게 된다. 과거엔 일주일쯤 전이었는데 2017년에 인사발령이 3월1일자에서 2월1일자로 변경된 이후 그나마 2주일쯤 전으로 앞당겨졌다. 이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이 교권은 안중에도 없고 교사를 기계 부품이나 장기판의 졸(卒)처럼 여김을 보여주는 증거다. 고교학점제로 낯선 과목을 맡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구태가 새삼스럽게 문제로 불거진 것이다. 일부 혁신학교나 사립학교처럼 신학년 2~3개월 전부터 담당할 학년·과목을 준비할 수 있도록 인사 제도를 일신해야 한다.
교사가 체감하는 문제부터 해결을
다섯째, 내신성적이 상대평가라는 점이다. 내신성적을 상대평가로 매기는 나라는 선진국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도 전무하다. 다들 절대평가로 등급(A, B, C…)을 적거나 점수(주로 원점수)를 쓴다. 과목별 등수를 알려주는 경우가 간혹 있으나 그런 사례는 내신성적을 반영하지 않거나(핀란드·영국·일본 등) 참고로 알려주는 것에 불과하다. 내신 상대평가를 하지 않는 이유는 내신 상대평가가 학교라는 소집단 내 ‘제로섬’ 경쟁을 유발해 체감 경쟁 강도를 높일 뿐 아니라,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특정 과목(학업 능력이 높은 학생들이 선호할 것으로 보이는 과목)을 피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두 번째 문제, 즉 상대평가가 ‘합리적 과목 선택’을 방해한다는 점은 내신뿐만 아니라 수능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수능에서 물리, 경제 등을 기피하고 제2외국어 선택자의 70%가 아랍어로 쏠리는 웃지 못할 현상이 벌어졌다. 참고로 OECD 국가들 대부분이 대입 시험을 치르고 있지만 (상대등급처럼) 과목별 평균 등급이 동일하거나 (표준점수처럼) 과목별 최고점이 달라지는 희한한 지표를 쓰는 나라는 없다.
이처럼 불합리한 상대평가가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능을 상대평가로 하면 선택과목 간 난이도 조절에 실패할 때 쏟아질 비난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즉 출제 당국의 보신주의가 주범이다. 내신이 상대평가인 이유는 보다 심오하다. 일단 1990년대 후반 절대평가로 바꿨을 때 고교들 사이에 ‘내신성적 잘 주기’ 경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그리고 상대평가 내신성적을 대입에 반영하면 ‘지역 균등 선발 효과’가 발생한다. 정시(수능 위주 전형)보다 학생부 종합전형(학종)에서 계층별 불평등이 더 심하게 나타날 것 같은데 실은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학종에서 내신(상대평가)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내신을 절대평가로 바꾸면 강남 집값이 뛰고 특목고·자사고 쏠림이 심해질 것이다. 이를 보정할 방법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제안한 바 있는 ‘지역별 비례선발제’(아마도 광역지자체별 입학쿼터제)를 병행하는 것밖에 없다.
이렇듯 내신 상대평가는 고교학점제와 병행하기 어려운 불합리한 제도이고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일종의 정치적인 이유로 살아남아 있다. 단기적 개선은 어렵지만, 2015 교육과정처럼 적어도 일부 선택과목은 절대평가를 하는 방법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에는 ‘교권 보호 강화’와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 확대’가 박혀 있다. 하지만 정작 동분서주하는 교사들의 실질적인 고충을 경감해주지 않는다면, ‘이재명 정부도 별수 없구나’라는 자괴감이 현장을 잠식할 것이다. ‘교권 강화’와 ‘교원 기본권 확대’가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21개 회원국이 한국 주도로 열린 첫 디지털·AI 장관회의에서 ‘모두의 번영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디지털·AI 전환’에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4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처음으로 열린 APEC 디지털·AI 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합의문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이번 회의는 오는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와 연계해 진행됐다. 장관급인 마이클 크라치오스 미국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 슝지쥔 중국 산업정보화부 차관, 이마가와 다쿠오 일본 총무성 차관 등 디지털·AI 분야 각료급 인사가 참석했다.
장관선언문에는 디지털·AI 기술을 통해 공동의 도전과제를 해결하고 연결성을 확대하며,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선언문은 “우리는 혁신적인 정보통신기술(ICT) 및 AI와 같은 디지털 기술 관련 위험을 완화함과 동시에 혜택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할 수 있도록 모든 관련 APEC 포라(협의체) 간 지속적인 협력을 독려한다”고 명시했다. 올해 말까지 한국 주도로 추진 중인 APEC AI 이니셔티브 개발 작업도 높이 평가했다.
의장을 맡은 배경훈 과기정통부 장관은 회의 후 언론 브리핑에서 “그간 APEC 실무 차원에서 논의돼온 디지털·AI 의제를 장관급 수준의 공동 원칙과 협력 방향으로 명문화해 역내 정책 협력의 구체적인 진전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배 장관은 “회원경제 간 정책적 우선순위의 차이로 인해 조율이 어려웠던 부분도 있었다”면서도 “각 회원경제가 합의를 도출했다는 것은 디지털·AI 협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확고한 의지를 나타내는 중요한 신호”라고 말했다.
배 장관은 이번 회의를 통해 APEC 내 디지털·AI 고위급 협의체를 정례화할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봤다. 향후 공동연구 프로젝트 추진, 국제 표준화 협력 등에 나설 계획이다.
과기정통부는 5일 세계은행과 함께 ‘글로벌 디지털·AI 포럼’을 개최한다. 주요 회원국 고위급 인사뿐만 아니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엔비디아, SK, LG 등 국내외 기술기업 관계자들이 참여해 AI·디지털 생태계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배 장관은 백악관 크라치오스 실장과 만나 AI 기술 투자,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등과 관련해 양국 협력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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