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공간
수원의정부검사출신변호사 중대재해 유죄 판결, 실형은 8%…예방보다 감형 치중 조장 우려
- 이길중
- 25-12-17
- 0 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법원이 유죄로 판단한 사건 중 실형 선고 비율은 8%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이 ‘유족과의 합의’를 감형 요소로 반영하는 게 주요 이유로 분석됐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기업이 사고 예방보다 사고 발생 후 합의에 더 많은 비용을 투자함으로써 중대재해처벌법 취지에 반하는 상황을 법원이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산하 양형연구회는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강당에서 ‘중대재해 처벌과 양형’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에 대한 양형기준을 논의하기 위해 처음으로 마련된 자리다.
범선윤 광주지법 순천지원 부장판사는 주제발표에서 2022년 1월 법 시행부터 지난 9월까지 유죄 판결이 내려진 138건(자연인 70건, 법인 68건)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이 기간 피고인 70명에게 선고된 유죄 판결 중 징역형 실형은 6건(8.57%)에 불과했다. 집행유예가 61건(87.14%)으로 가장 많았는데, 일반 형사사건의 집행유예율(36.5%)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징역형 실형을 선고받은 6건은 평균 46.7개월이었다. 집행유예 선고 61건의 징역 기간은 평균 12.8개월로 대폭 낮았다. 실형과 집행유예를 합친 67건에 선고된 징역은 평균 15.9개월로 집계됐다.
징역형을 받지 않은 3명에게는 2000만~3000만원의 벌금이 선고됐다. 양벌규정에 따라 68개 법인도 벌금형을 받았다. 1년 사이 하청업체 노동자 3명이 사망한 선박수리업체 삼강에스앤씨가 벌금 20억원을 선고받았고, 나머지 67개 법인에 선고된 벌금은 평균 8789만원이었다. 법원은 법인에 벌금형을 선고하면서 회사의 규모, 경제력 등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산업재해에 강력한 처벌이 있을 것이란 예상과 다른 결과다. 범 부장판사는 “실형률이 8.57%로 나타난 이유는 유족과의 형사합의를 통해 유족이 법원에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는 사정이 주요 양형 요소로 참작됐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죄를 선고받은 피고인 70명 중 69명은 유족과 합의했다.
토론자들은 이런 양형 추세가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를 퇴색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범죄에 대한 집행유예율이 87.14%에 달하는 상황은 기업 행동을 심각하게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합의에 따른 유족 측 처벌 불원 의사를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면, 기업들이 예방에 필요한 안전 투자를 사후 합의 비용으로 대체하고 경영진의 책임을 감형하려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수원지법 형사14부(부장판사 고권홍)는 23명이 숨진 아리셀 화재 사건에서 유족과의 합의를 양형에 제한적으로 반영하며 “그동안 벌어 놓은 돈으로 합의를 하면 기업이 선처를 받는 악순환을 뿌리 뽑지 않는 한 산재 발생률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순관 아리셀 대표는 1심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최고 형량인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이 판례를 토대로 양형기준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정지원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판사는 “양형인자로서 유족과의 합의에 지나치게 큰 효과를 부여하기보다 ‘재발 방지 조치의 이행’을 병행해야 한다”며 “법원조사관의 양형 조사를 통해 재발 방지 조치 이행 여부와 그 내용을 충실히 파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주일째다. 대통령실이 청와대로 이사 중이다. 비서실·브리핑룸은 성탄절, 대통령 관저는 설 전까지 옮긴단다. 2022년 5월, 윤석열이 용산 국방부에 집무실을 터 잡은 지 3년7개월 만이다. “구중궁궐 벗어나 국민과 더 소통하겠다.” 다 본 대로, 그 말은 식언이 됐다. 북악산 자락에 돌아간 대통령실은 한 시대의 종언을 뜻한다. 머잖아 ‘BH’(Blue House)로, ‘청(靑)’으로 다시 불릴 게다. 역사는 저 용산시대를 뭐라 적을까.
난세다. 저토록 술·욕설·무속에 전 대통령이 없었다. 이념을 국가지향점 삼고, 검찰권·감사권을 저리 사유화하고, 비상대권을 2년 넘게 벼른 ‘반헌법·반민주’ 대통령도 없었다. “오직 국민 뜻에 따르겠다.” “참모 뒤에 숨지 않겠다.” “정부 잘못은 솔직하게 고백하겠다.” 실소(失笑) 터지지만, 집권 첫날 윤석열이 한 말이다. 바로, 김건희는 대통령놀이를 시작했다. 취임식에 위법자들(도이치모터스·통일교·명태균·건진법사) 특별초대하고, 청탁과 명품을 주고받고, 대통령급 비화폰 쓰고, 법무장관에게 본인 수사를 챙겨 물었다. 특검 말대로, 법 밖에 존재한 ‘V0’였다. 명태균 비유대로, 장님무사 어깨 위에 탄 주술사였다. 그러다 군과 비상입법부를 앞세워 절대권력을 쥐려 한 게 12·3 내란이다.
짓밟은 게 민주주의·헌법뿐인가. 윤석열 집권 3년(2022년 5월10일~2025년 4월4일)간 경제성장률은 분기당 0.35%였다. 내수·투자·수출 다 얼었다. 불경기 속 부자감세로 세수펑크만 100조원에 달한다. 지금 들통나고 바로잡히는 국정이 한둘인가. 주먹구구 추계라는 ‘의대 증원 2000명’, 법원이 제동 건 ‘2인 방통위의 YTN 민영화’, 놀림감 된 ‘부산엑스포·동해 유전’, 5세 취학 혼란의 시작은 윤석열의 입이었다. 참사는 이태원·오송·예천·새만금(잼버리)이 닮았다. 관재였고, 아래만 벌받고, 국가는 없었다. 돌아보는 국정 평가는 에누리없다. 인공지능(AI)·재생에너지 뒷전이고, 연구인력 생태계도 헝클었다. 민생·미래 다 ‘윤석열=암흑기’였다.
해서, 이맘때다. 교수신문 올해의 사자성어는 윤석열을 직격했다. 숱한 참사 나 몰라라 한 2022년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過而不改·과이불개) 했고, 김건희 디올백을 덮으려 한 2023년 “이로움 보며 의로움을 잊는다”(見利忘義·견리망의) 했다. 시국선언 봇물 터진 2024년 내란 직전엔 “제멋대로 권력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跳粱跋扈·도량발호) 했다. 소 귀에 경 읽기였다. 그 경고뿐인가. 2024년 4·10 총선 참패 후 “나부터 달라지겠다” 한 윤석열은 이내 부정선거라고 표변했다. 보수 논객도 ‘김건희 법정 세우라’ 아우성친 그해 10월엔 “돌 던지면 맞고 가겠다”며 북에 무인기를 보내기 시작했다. 철면피 윤석열 말을 끝없이 소환하는 이유가 있다. 누굴 탓할 건가. 그는 전두환보다 못한 ‘최악의 대통령’이었다(11월28일 갤럽).
세 특검이 12월에 장정을 마친다. 하나, 내란 단죄는 한덕수(1월21일)-김건희(1월28일)-윤석열·김용현·이상민(2월) 순서로 해를 넘긴다. 지귀연 재판부의 윤석열 구속 취소와 ‘만담·침대’ 재판이 뒤바뀐 선고와 시간 지체를 불러왔다. 관용없이, 역사의 형사법정은 철퇴를 내려야 한다. 다들 내다보듯, 그 철퇴 무게가 사법의 존재 의미와 앞날을 가를 것이다. 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직선거리 5.8㎞. 용산과 청와대는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다. 청와대 가는 산책로에 작은 현수막이 걸렸다. ‘광장의 빛으로, 다시 청와대’. 열한 자의 글씨는 그 겨울 내란에 맞선 여의도·한남동·남태령·광화문광장을 새기고, 새 나라를 원하는 시민 열망을 품었다. 삿되고 그릇되다 친위쿠데타·전쟁까지 획책한 불의의 시대가 끝났다는 선언이리라. 왕을 꿈꾼 자와 왕비처럼 살던 자의 용산과 단절하라는 명령이리라. 이 나라 국정과 숫자는 이제 ‘이재명의 기록’이라는 경구이리라. 그 기억·바람·다짐대로, 국정도 정치도 공직사회도 다 ‘정상국가’로 돌아가야 한다.
을사년이 저문다. ‘을씨년스럽다’ 한 역사 속 그해처럼, 2025년 푸른뱀의 해도 다사다난했다. 대통령이 바뀌고 통상전쟁에 맘 졸이고 산불·수마가 할퀴었다. 그 롤러코스터의 끝자락, 이 땅은 3분기 성장률·혼인율·합계출산율이 반등하고 경주 APEC이 국격을 올린 ‘희망의 싹’도 틔웠다. 결국, 1년이 다 흘러 흘러 깨닫는다. 빛이 어둠을 막고, 진실이 거짓을 이겼다. 그걸 헌법 속에서 걸어나온 시민이 해냈다. 그 주권자 이름으로, 저 용산의 흑역사를 오롯이 기록하고, 민주·민족·민생의 새봄을 열어야 한다.
어느새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가 되었다. SNS에는 연초에 세운 목표를 얼마나 이뤘는지 돌아보는 글들이 올라온다. 개인도 이렇게 1년을 정산하는데, 정부 역시 한 해 동안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체계적으로 점검하고 평가할 테다. 그리고 매년 빠짐없이, 정부는 높은 성과 달성률을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다만 발표된 수치만큼 우리의 일상이 실제로 나아졌는지는 늘 의문이 남는다. 숫자 뒤에 가려진 행정의 착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과거 한 참여 거버넌스 사업에서는 시민들이 공론장에서 치열하게 토론했지만, 실제로는 사전에 정책이 정해진 상태에서 수만명이 참여한 결과물인 것처럼 포장된 사례가 있었다. 청년 10명 중 3명이 이른바 ‘쉬었음’ 상태에 놓인 현실을 해결하는 데에도 비슷한 방식이 동원될 수 있다. 양호경에 따르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대신, 구직 지원금 등을 통해 청년을 ‘구직 중’ 혹은 비정규직 상태로 전환하면 통계상으로는 상당수가 ‘쉬었음’을 벗어나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실제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착시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주택 정책에서 두드러진다. 정부는 올해 건설·매입임대를 포함해 5만호 이상을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연말을 앞둔 시점의 결과 자료를 보면 목표 달성은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서울시의 매입임대주택 역시 2024년 기준 예산 대비 집행률이 50% 수준에 머물렀다.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반복되어도 달성 여부에 대한 명확한 평가 없이 해를 넘기고, 새해가 되면 또다시 새로운 청사진이 제시된다.
주택 정책에서 착시가 반복되는 이유는 사업 추진 과정 곳곳에 행정이 조리할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예산 편성부터 사업계획 수립 및 선정, 집의 준공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며 단계마다 실적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집행 가능성과 무관하게 예산을 책정하는 것만으로도 성과에 포함되거나, 민간 협업 사업의 경우 실제 추진 여부와 관계없이 선정 사실만으로 실적으로 발표되기도 한다. 예컨대 ‘특화형 임대주택’은 작년에만 6000가구가 선정되었다고 발표되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은 10% 남짓에 불과하다. 현장에서 정책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를 점검하지 않은 채, 서류에 그럴듯한 숫자만 채워가는 관행이 이어진다면 시민에게는 매번 또 다른 신기루만 제시될 뿐이다.
이번 정부는 행정을 실효성 있게 작동시키는 역량이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만큼, 첫해에는 집행 체계를 정비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행정 조직이 말초까지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착시를 만들어내는 수치가 아니라 시민의 일상을 실제로 바꾸는 성과를 만들어내야 할 시점이다. 숫자를 채우는 행정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숫자를 보여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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