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공간
평택개인회생 최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행위에 책임지는 윤리적 여성 주체의 등장…
- 이길중
- 25-11-19
- 14 회
이를테면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는 역사적 사실로서 5·18을 증언해야 한다는 요구에서 빗겨나 있다. 광주의 충격적인 역사적 경험을 총체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명령을 따르지도 않고, 항쟁의 주체를 올바르게 재현해야 한다는 과제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 작품과 같은 해 발표된 홍희담의 <깃발>은 군인들의 학살을 목격한 민중이 무장투쟁을 선택하고 시민군의 일원으로 도청에 남아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와 이들의 싸움을 기록하고 역사적 투쟁을 계속해 나가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이 작품에서 죽음으로써 항쟁의 주체가 됐던 이들이나 살아남아 항쟁을 계속하는 인물은 모두 여성이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광주항쟁에 대한 민중 여성의 관점을 일관되게 견지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는 민중 여성을 항쟁의 주체로 서술하는 이런 전형적 관점과는 다른 지점에서 광주의 경험에 접근한다.
작품은 프롤로그와 전체 10개의 절로 이뤄졌는데, 절은 각기 다른 목소리로 서술되고 있다. 작품은 광주의 거리에서 엄마가 총에 맞는 장면을 목격하는 소녀의 1인칭 독백, 역사적 폭력의 피해자인 그에게 방어적 폭력으로 맞섰다가 결국 그의 어두운 심연을 이해해 가는 남자의 서술, 실종된 소녀의 행적을 좇아가는 오빠의 친구들인 “우리”의 서술, 그리고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내레이터의 서술(프롤로그)이 교차하면서 전개된다. 작품은 이 여러 화자가 번갈아 부르는 “돌림노래”다. 이 돌림노래는 계속되는 변주곡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런데 이 돌림노래의 주제 파트를 이루는 소녀의 내면은 이미 정상적 언어로는 접근할 수 없는 광기의 세계로 들어갔다. 엄마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적 경험에 더해 자신이 엄마의 손을 뿌리쳤다는 죄책감은 그의 마음에 검은 장막을 드리웠다. 심리적 장벽 속에 갇힌 실성한 여성이 항쟁의 역사적 주체가 될 수는 없다. 소설은 소녀의 내면에 다가가고 그의 고통에 감염되는 남성들의 목소리에 상당한 서술의 몫을 배분함으로써 광주의 경험을 우회적으로 그린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작품은 역사의 폭력에 의해 훼손된 소녀를 찾고 그를 통해 의식의 변화를 이루는 남성들의 이야기이자, 순결한 소녀의 훼손을 통해 역사의 비극을 강화하는 여성 수난 서사의 계보 안에 있는 작품으로 읽힐 법하다. 특히 그가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죽은 오빠를 찾아 헤맨다는 발상이나, 아버지를 대신하는 듯한 오빠의 친구들에게 가장 객관적인 서술 문체를 부여하고 있는 듯한 인상은 이 소설의 여성주의적 함의를 제한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더욱이 주인공 소녀는 지속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지만, 그 폭력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피학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수동적 존재로 읽힐 소지가 다분하다. 이런 연유로 소녀가 사회적 행위성을 갖지 못한 “순수한 실체”이자 “자연적 존재”로 미학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내려지기도 한다. 실제로 소녀의 독백이나 행동이 해독 불가능한 것으로 읽히면서, 광주의 참상은 재현의 수위를 넘어서는 어떤 절대 사건으로 신비화되기도 했다. 언어화할 수 없는 것을 언어화하려는 역설적 시도를 감행하겠다는 작가의 발언이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소환되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은 소녀에게 남성적 서술을 통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스스로 말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는 역사의 폭력에 희생된 수동적 여성이 아니다. 자기 목소리를 갖지 못한 채 남성에 의해 대리 재현돼야 하는 대상도 아니다. 소녀는 희생의 자리에서 이탈해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씨를 무력화하고 그를 변화시키는 무시무시한 힘을 행사한다. 그가 성폭력에 저항하지 않았던 것이나 자기 신체를 자해했던 것은 엄마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혼자 살아남은 자신을 처벌하는 행동이다. “내 끔찍한 범죄의 자리, 나 혼자 살아남으려고 나는 엄마의 손, 팔, 흰 눈자위를 내 발로 짓이겼어. 엄마가 눈자위도 없이 나를 보고 있었어.” 그는 죽어가는 엄마의 자리에 자신을 놓고, 그 고통을 견디는 윤리적 행동을 감행한다. 물론 이런 윤리적 주체의 형상은 민중문학이 그려왔던 주체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
엄마가 죽어가던 트라우마적 장면을 기억하는 것은 소녀가 대면해야 하는 가장 큰 숙제였다. 이 대면이 무서워 그는 자신의 눈에 검은 장막을 두르고 자신을 광기 속에 유폐해왔다. 소설의 절정은 소녀가 검은 장막을 걷어내고 엄마가 총에 맞아 죽던 순간을 똑바로 바라보는 장면이다.
“그래 눈을 똑바로 뜨고 그 순간을 바라보아야 해. 엄마 얼굴이 뒤로 꺾였고 구멍이 나버린 엄마가 나를 향해 얼굴을 돌리면서 입을 벌렸을 때 엄마의 눈은 이미 흰자위만 보였어. 나는 …… 그래. 자 천천히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을 되새겨봐. 내 뼈가 고통으로 녹을 정도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소녀가 오빠를 찾아 나서기로 한 것은 오빠에게 자신이 엄마에게 범한 범죄행위를 고백하기 위해서다. 엄마의 죽음과 그 죽음에서 자신이 한 행동을 말해야 한다는 의무가 그를 오빠를 찾아 나서게 만든 심리적 동인이다. 9절의 독백에서 소녀는 이제 자신이 오랫동안 회피해왔던 그날의 진실을 마주하고 그것을 말하는 데 성공한다. “자 이제는 무섭지 않아. 검은 휘장을 뜯어내고 내 흉악한 얼굴을 달처럼 무덤 위에 떠올리는 거야.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도록 내일 다시 곰팡이 난 내 몸을 햇볕에 말려야지.” 마침내 이 발화를 통해 소녀는 스스로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는 윤리적 주체의 자리에 올라선다.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는 광주의 비극을 몸소 체험한 소녀가 자신의 입으로 그날의 기억을 말하게 하고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을 스스로 떠맡게 만든 작품이다. 이 소녀의 주체적 형상이 없었다면 이 작품의 여성주의적 의미는 크게 반감됐을 것이다. 광주의 비극을 말하는 주체는 그의 행방을 쫓거나 그에게 감염된 남성 존재들에 앞서 자신의 얼굴에서 검은 장막을 스스로 걷어내는 여성 자신이다. 이 소녀의 형상을 1988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우리 앞에서 그려 보였다는 점에서 최윤은 한국 여성문학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 이명호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최근 ‘인공지능(AI) 전환’을 시도한 대구의 한 제조업체는 자금 부담을 호소했다. 데이터 축적을 위한 라벨·센서 부착에도 비용이 들었지만, 데이터 정제·활용과 로봇 운영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것도, AI를 다룰 전문인력 투입도 문제였다. 회사 관계자는 “(AI 전환으로) 기존에 생각지 못한 자금이 들어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18일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504개 제조기업의 AI 전환 실태를 조사한 ‘기업의 AI 전환 실태와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 기업 82.3%는 AI를 경영에 활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의 AI 활용률은 49.2%였지만, 중소기업은 4.2%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제조기업의 AI 활용이 더딘 이유로 자금·인재·효과 세 가지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먼저 자금 측면에서 AI는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는 만큼, 기업 73.6%는 AI 투자 비용을 부담으로 느꼈다. 자금 부담 호소 비율을 보면 대기업은 57.1%였지만 중소기업은 79.7%에 달했다.
인력 확보도 문제다. 응답 기업 80.7%는 AI 활용을 위한 전문인력이 없다고 답했고, 82.1%는 인력 충원도 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한국의 AI 인재는 2만1000명이지만 중국은 41만1000명, 인도는 19만5000명, 미국은 12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AI 전환이 성과로 이어질지를 두고서도 기업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60.6%는 AI 전환으로 인한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효과가 클 것’이라는 응답은 이보다 20%포인트가량 낮은 39.4%였다. 보고서는 “AI 전환에 적지 않은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제조업 특성상 투자 대비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 클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대한상의는 AI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역량별 맞춤형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AI 활용도가 높은 대기업에는 지원의 용처를 제한하기보다 기업이 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효과적이고, 반대로 AI 도입률이 낮은 기업은 도입 전·중·후 단계로 나눠 컨설팅과 기술 지원, 현장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또 정부가 추진 중인 AI 공장 및 제조 AI 센터 구축 사업을 확대·가속하는 등 AI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실증 모범 사례가 빨리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지금은 AI에 대한 미래 조감도를 정교하게 만들기보다 실제 데이터 축적과 활용, 인재 영입에 뛰어들어야 하는 시점”이라며 “제조 현장에 빠르게 확산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강력한 지원, 파격적 규제 혁신을 담은 메가 샌드박스라는 실행 전략이 맞물려 돌아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브라질 벨렝에서 열리고 있는 제3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 개최국을 제외하고 가장 큰 규모의 대표단을 파견한 나라는 중국으로 나타났다.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이 국가 주도로 재생에너지 산업을 키워 세계 기후변화 위기 대응을 주도하는 분위기와 연관된 것으로 풀이된다.
18일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따르면 COP30에는 194개국의 정부 지도자와 정부 관계자, 국제기구, 비정부기구(NGO) 등 5만6118명이 참석한다. 현장 참석자와 별도로 운영하는 ‘가상 참가자’는 5141명이 등록했다. 가상 참가자는 공식 협상에는 참여하지 못하지만, 공개 세션을 시청하고 일부 부대행사에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다.
정부 대표단과 준대표단을 합쳐 가장 규모가 큰 대표단을 꾸린 나라는 개최국 브라질로 3805명이 현장 참석자로 등록했다.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대표단은 중국으로 789명이 참석했다. 중국은 최근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탈 화석연료 정책을 추진해, 전세계 재생에너지 시장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미국이 도널드 드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파리협정을 탈퇴하는 등 기후대응에 역행하는 사이 중국이 새로운 기후 대응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중국에 이어 나이지리아(749명), 인도네시아(566명), 콩고민주공화국(556명), 프랑스(530명), 차드(528명), 호주(494명), 탄자니아(465명), 일본(461명) 순이었다.
한국 대표단은 238명으로 기후에너지환경부 등 정부 측 인사 86명과 전라남도와 여수시 등 준대표단 152명이 참석했다. 그간 모든 COP에 참석했던 미국은 이번에 참석하지 않았다. COP30에 불참한 국가는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산마리노 등 4개 국가다.
가장 작은 규모의 대표단을 꾸린 국가는 니카라과로 1명이 참석했다. 이 밖에 북한과 라트비아, 리히텐슈타인,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슬로바키아 등 5개 국가는 2인 대표단을 보냈다.
각국 대표단 구성원의 성별은 남성이 더 많았다. 영국 기후단체 카본브리프가 분석에 따르면, COP30 참가국 대표단의 평균 성비는 남성 53%, 여성 47%로 격차는 크지 않지만 성별 불균형이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만으로 대표단을 구성한 나라는 투발루(3명), 니제르(3명), 북한(2명), 니카라과(1명) 등 4곳이다.
COP30에 참석한 참관인 그룹 중 대다수는 세계자연기금(WWF), 워터에이드와 같은 비정부기구(NGO)로 전체 참관인 1만3402명 가운데 1만1300명이 NGO 구성원이었다. 한편 환경단체 연합인 KBPO(Kick Big Polluters Out)은 이번 COP30에 참석한 화석연료 로비스트가 1600명 이상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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