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공간

출장용접 공선옥 ‘피어라 수선화’…혈연주의 넘어서는 가난한 ‘어머니’들의 역사 [플랫]

출장용접 1987년부터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10년간은 한국사에서 좋았던 시간으로 회고된다. 6·10 항쟁 후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 체제가 종식돼 민주주의가 제도화하고, 경제적으로는 국가 통제에서 벗어나 시장이 활성화됐다. 문화적으로는 대중 소비사회가 출현해 욕망의 자유가 추구되고 정체성 정치 투쟁이 시작됐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은 중산층의 체험에 기반한 것이다. 공선옥은 창작집 <피어라 수선화>에서 87년 체제 후 정치의 광장을 메웠던 사람들이 떠난 뒤 덩그러니 남겨진 자들의 삶을 그린다. 특히 광주항쟁의 시민군이었던 ‘서발턴(Subaltern·하위 주체)’들이 정치세력화에 실패하고 더욱 깊은 절망을 안게 된 상황을 그린다.
어떻게 목숨 붙이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공선옥의 문학은 1990년대의 미적 정조인 ‘쿨’함과 거리를 두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개인의 자유를 예찬하기보다 상호의존과 돌봄에서 희망을 찾고자 한다. 자유는 극소수 비장애 중산층 남성에게나 가능한 것이자 자본주의가 유포하는 환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장 자크 루소의 “우리의 마음을 인류애로 이끄는 것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비참함”이라는 발견처럼 우리의 외로움과 비참함을 수치가 아니라 연대의 실마리로 삼자고 주장한다. 폐결핵에 걸린 제 애인을 살리기 위해 ‘나’를 유혹해 ‘나’의 적금통장을 훔쳐 간 동거남에게 감동할 만큼 공선옥의 인물들은 사랑을 찬미한다.
공선옥의 문학은 1990년대 주류 페미니즘 문학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1990년대 여성문학은 ‘사랑의 탈낭만화’와 가부장적 가족 비판을 통해 더 이상 규범적 여성성에 순응하지 않는 ‘나쁜 여자’를 탄생시켰다. 특히 여성문학은 헌신과 인내를 강요하며 여성의 성적 주체성과 시민적 권리를 부정해 온 ‘모성 이데올로기’와 단호히 결별하고자 했다.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듯이 공선옥의 여성들은 작가의 <붉은 포대기>(2003)의 제목처럼 어려운 시절에도 아이를 낳고, 마음을 추스르듯이 아이를 고쳐 업으며 ‘나는 어미다’라고 되뇐다.
공선옥의 문학에서 모성은 단순한 여성의 본능이나 중산층 가부장제의 성 역할을 넘어서는 ‘자기 진정성 윤리’(찰스 테일러)의 일환이다. 진정성은 좋은 삶과 올바른 삶을 규정하는 가치의 체계이자 도덕적 이상으로 자신의 참된 자아를 실현하는 것을 가장 큰 미덕으로 삼는 근대의 윤리다. 공선옥의 여성들은 장밋빛 미래가 보이지 않지만, 책임감으로 불행한 남자들을 보살피고 그와 가족을 꾸리는 것으로 진정성 윤리를 실천하고자 한다. 이러한 지고지순함은 이들이 전라도 여자라는 것과 관련이 깊다. “문둥이처럼, 어차피, 난,/ 가난과 태양의 혼혈”(김승희 ‘남도창(唱)’)이라는 시구처럼 전라도는 여순사건, 광주항쟁 등 국가폭력이 자행되고, 서울과 경상도를 잇는 근대화 계획에서도 배제된 낙인과 차별의 땅이다.
이렇듯 척박한 땅에서 전라도 여성들은 어떻게 진정성을 구현하는가? ‘목숨’의 혜자는 광주항쟁의 시민군이었던 재호의 집을 찾아나서고 그의 어머니와 그의 아들과 만난다. 아이를 낙태할 것인지 낳을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서다. 재호의 어머니는 전라도 여성의 모성 윤리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첫 남편이 여순사건으로 토벌대에 쫓겨 빨치산이 되자, 살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재혼하고 재호를 낳는다. 그러나 재호가 광주항쟁의 ‘폭도’로 낙인찍혀 삶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자 재호의 아이를 거두며 살아간다. 혜자는 여정의 끝에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다. “너는 불순분자의 아들, 폭도의 아들. 그리고 나는 또 그 불순분자, 폭도의 자식을 배었구나”라는 독백은 그의 결단이 정치적임을 뜻한다.
공선옥 인물들이 추구하는 모성 윤리는 전라도 여성으로서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응전의 방식이기도 하지만, 폭압적인 역사가 강요하는 자기희생적인 결단이다. 광주항쟁의 트라우마를 짊어진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목격자의 자리에 있었던 여성들은 죄의식을 느끼고, 포용과 희생으로 인고하는 것이다. 가령 ‘흰달’에서 시민군 출신 남편은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불륜을 하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를 아내에게 맡긴다. 시민군 남성의 고통이 목격자 여성의 고통보다 우위에 서면서 둘의 관계에서 은밀히 권력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라도 출신으로 구로공단 ‘부라자’ 공장의 여공을 거쳐 성매매 여성이 된 혜자의 인생은 파란만장하지만, 서브 서사로 전락하게 된다.
공선옥 문학은 아버지들의 근현대사에 가려져 온 어머니들의 역사를 가시화했다는 점에서 1990년대 여성문학의 자산이 된다. 혹자는 공선옥의 소설을 출구 없는 민중의 절망을 다룬 신경향파 문학의 일종으로 취급한다. 왕조사, 이념사, 민중사 등 다양한 역사 기술에서도 빠져 있는 서발턴 여성의 역사가 파편적으로나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간과한다. 가난한 ‘모자(母子) 가정’의 이야기는 ‘모성애’가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유일한 ‘자본’이 돼온 역사를 드러내되, 가부장제의 대리자로서 어머니의 위대함을 찬미하는 서사적 진부함에 빠지지 않는다. 공선옥 소설에서 어머니들의 삶은 다양한 주체 위치의 차이로 인해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여성들이 자매애를 획득해 가는 실마리로써 기능한다.
먼저 ‘목마른 계절’, ‘우리 생애의 꽃’은 ‘배운 여자’로 가부장적 도덕 관념의 영향 아래 놓여 있는 홀어미들이 주로 성적 육체를 매개로 한 ‘서비스 이코노미’를 자식들을 부양하는 여성들과 공동육아를 하면서 차이와 편견을 넘어 서로에 대한 우정을 획득하는 이야기다. 다른 한편으로 ‘목숨’, ‘우리 생애의 꽃’은 ‘어머니·딸의 플롯’을 통해 딸이 어머니와 화해하는 이야기다. 이른바 ‘일부종사’하지 못하고 제 자식조차 온전히 거두지 못하는 것은 하위계급 여성의 또 다른 현실이다. 어린 딸은 “제 자궁의 헛헛함”을 견디지 못했다며 어머니를 비난해왔지만, 성인이 되자 서러운 세월을 살아온 어머니에게 사랑과 온기가 필요했음을 깨닫는다. 인간적인 욕망을 비워낸 채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탈성화된(desexualized) 모성이라는 규율화된 이미지에 균열을 내고자 하는 것이다.
<피어라 수선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가난한 어머니들의 생존 투쟁이 재현되면서 ‘모성의 신성화’, ‘성 역할의 자연화’, ‘성모·창부 이분법’에 기반한 모성 이데올로기가 되레 심문당한다는 것이다. 가난하고 배운 게 없고, 또 여성이 번듯한 일자리를 갖기 어려운 가부장제 사회에서 어머니들은 어떻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가? ‘목마른 계절’의 현순, ‘우리 생애의 꽃’의 수자는 계단 깊은 지하에서 카페나 술집을 운영하며, 남자를 낚기 위해 전략을 짜고 때로 성매매조차 무릅쓰는 “꽃뱀”, “창부”다. 커다란 젖가슴으로 사내들을 유혹하지만 “불경기거든. 애가 셋이야. 절박해”라는 항변처럼 자식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벌거벗은 성모’다. 이처럼 생생한 이야기들은 성녀·창녀, 선·악 판단을 중지시킨다.
공선옥의 문학은 여성 서발턴의 삶에 대한 기록이자 모성성 다시 쓰기다. 전쟁과 식민, 냉전의 역사 속에서 아버지는 부재하거나 실질적인 가장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부권’은 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 가족’은 위력을 발휘하며 모자 가정을 빈곤과 차별의 그늘 속으로 밀어넣어왔다. 2000년대 문학에서 공선옥의 여성들은 더 이상 ‘부서진’ 남자들을 기다리지 않고 혈연주의와 가부장제를 넘어서는 ‘난잡한 돌봄’(더글러스 크림프) 공동체를 이야기한다. 친족의 개념을 확장하는 것으로 시작해 그 범위를 증식시키고 의식의 구조를 바꾸는 급진적인 실험에 돌입하는 것이다. 사랑은 혈연이 섞이지 않아도, 심지어 종이 다르다고 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 김은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올해 인플루엔자(독감) 유행 규모는 ‘역대급’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질병관리청은 독감 유행이 예년보다 빠르게 시작해 더 길게 유행할 것으로 보고, 10년 내 가장 심한 수준으로 유행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독감은 일반 감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몸살과 고열을 동반하는데, 예방접종을 하면 증상이 훨씬 약하게 지나간다. 하지만 예방접종률은 최근 수년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고위험군인 어린이 접종률은 최근 5년간 하락세가 뚜렷하다. 2021-2022절기 71.7%였던 어린이(6개월~만13세) 접종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65.4%까지 내려왔다. 올해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소폭 올라간 추세이나, 무서운 유행 기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강동윤 울산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올해 독감이 유행하는 이유로 “집단면역 약화 등 복합적인 외부요인이 작용했고, 예방접종률 저하도 하나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짚었다. 강 교수는 “젊은층이 독감으로 사망할 가능성은 낮지만, ‘위험이 낮다’는 게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하루라도 빨리 독감 예방접종을 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지난 6일 강 교수와 전화·서면 인터뷰를 통해 독감 유행 원인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예방접종과 관련된 각종 오해가 어디까지 사실인지 가려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 겨울이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독감 유행 기세가 무섭다. 질병청 통계를 보면 지난달 말까지 독감 의사환자(의심환자) 수가 외래환자 1000명당 13.6명으로, 1년 전(3.9명)의 3.5배 수준이다. 원인이 무엇인가.
“여러 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독감 유행은 학령기 아동·청소년이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접종률이 집단면역을 형성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독감이 2016년 이후 최고 유행세를 보이던) 올해 1월 첫 주(1주차) 상황만 되돌아 보더라도, 13~18세(177.4명)에서 가장 발생이 높았고, 7~12세(161.6명), 19~49세(129.1명) 순으로 발생하며 학령기 아동·청소년층 전파가 유행을 주도했다. 이 연령대의 낮은 접종률과 유행세가 일치했다.
그 외에는 코로나19 시기에 떨어진 집단면역력, 마스크 해제와 같은 사람들의 행동변화 등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올해는 A형 독감 H1N1과 H3N2가 동시에 유행하면서 피해가 커졌다.”
- 올해(2025-2026절기)부터 독감 국가예방접종사업 백신을 4가 백신(4가지 바이러스 주에 대한 면역 형성)에서 3가로 바꾼 것이 원인이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니다. 유행 중인 바이러스가 접종 대상인 3가 백신의 구성주가 ‘매우 유사하거나 동일’하다는 것이 질병청과 세계보건기구(WHO)의 공식 발표다. 세계적으로 이번에 백신주에서 제외된 B형 야마가타 계열 바이러스가 소멸 추세여서, 3가가 표준이 되고 있다. 4가와 3가의 예방 효과는 동일하다.”
- 독감 유행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접종률 하락이다.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을 경험하면서 커진 백신 자체에 대한 거부감, 백신 관련 음모론의 영향이 있을까. 5년 연속 소아 접종률이 하락했다.
“코로나19 이후로 퍼진 백신에 대한 피로감, 부작용 우려, 음모론 등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예방접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부모가 자녀 백신 접종 일부를 지연시키거나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10대 이상에서 접종률이 낮거나 감소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확인됐다. 영유아는 아직 80% 초중반의 비교적 높은 접종률을 유지하나, 초등학생은 60%대, 중학생은 50% 이하로 크게 낮아졌다. 만 13세 이하 어린이 독감 백신 접종률이 54.0%(이달 10일 기준)인데, 다행히 지난해보다는 약간 증가했으나 집단면역을 형성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 소아·청소년 접종만 신경써서 하고, 청년층은 안 맞고 올해 겨울을 보내도 되지 않나. 예방접종이 부담스럽다면 그냥 병에 걸려서 자연면역을 형성하면 안 되나.
“젊은 사람이라고 해서 독감이 ‘가벼운 감기’ 수준으로 지나가지 않는다. 열이 39도 이상 나면서 1~2주간 업무 및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고, 일부는 폐렴이나 심근염 같은 합병증으로 입원하기도 한다.
또한 젊은층은 활동량이 많고 가족·직장·학교 등에서 접촉이 잦기 때문에 바이러스를 전파시키는 주요 매개층이다. 설사 본인은 가볍게 앓더라도, 노인·영유아·만성질환자 등 고위험군에게 옮길 경우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위험이 낮다’는 게 ‘필요없다’는 뜻은 아니다. 백신은 나 자신뿐 아니라, 내 주변 사람을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한 배려 혹은 사랑이다.”
- 독감 예방접종률까지 떨어뜨릴 정도로,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이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코로나19 백신 안전성을 기존의 다른 백신들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인가.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은 통계적으로 독감백신 등 기존 백신과 비교해보아도 ‘전체 인구집단에 대해 매우 유사한 수준’의 부작용을 보인다. 그러나 실제 접종 대상이 많고, 초기에 집중된 이상반응 감시로 인해 부작용이 더 크게 느껴졌다.
수많은 인구가 단기간 내 접종했기에 통계적으로 이상반응 사례가 더 많이 보고됐고, 사회적 관심을 받으며 초반에 이상반응 신고가 더 많아지는 ‘자극된 신고 현상’도 있었다. 또한 백신 이상반응을 전수 분석하는 등 엄격한 감시 정책의 영향도 부작용 보고가 많아지게 한 원인이 됐다. 독감백신도 해마다 수백 건의 중증 이상반응이 집계되고 있는데, 인과성이 확인된 사례는 극히 일부다.”
- 최근 코로나19 백신이 암을 유발한다는 국내 의료진 연구 결과가 국제학술지에 실린 것이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봐야 하나.
“저는 신뢰하지 않는다. 해당 연구의 방법적 오류가 너무 명백하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고려대 정재훈 예방의학과 교수가 설명한 글과 영상을 참고했으면 한다. 정 교수는 ”연구 설계의 근본적인 결함, 백신 접종자들의 적극적인 건강 관리 행태로 인해 발생한 결과일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며 ”이러한 심각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극적인 결론을 제시해 불필요한 공포와 오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연구다“라고 비판했다.”
- 모든 백신의 부작용을 더 줄일 수는 없나.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맞아야 하나.
“모두에게 어떠한 부작용도 없는 백신은 불가능하다. 면역반응 자체가 ‘의도된 자극’이기 때문이다. 백신은 병원체의 일부 성분(항원)을 인체에 주입해 면역계를 활성화시키는 원리다. 이 과정에서 열, 근육통, 국소 통증 같은 경미한 염증 반응이 발생하는 것은 정상적인 생리 반응이다.
백신 부작용으로 중증 이상반응이 생길 확률은 벼락을 맞을 확률(약 100만분의 1)과 비슷하거나 더 낮다. 반면 백신을 맞지 않고 병에 걸릴 확률은 수천~수만배 더 높다. 예를 들어, 독감으로 한 해에 수만 명이 입원하고 수백 명이 사망하지만, 독감으로 인한 백신 아나필락시스(특정 물질에 대한 급성 전신 알레르기 반응)는 100만 회 중 1~2건 수준이다. 물론 백신의 위험이 0%는 아니나, 0.0001%의 위험으로 50% 이상의 위험을 줄이는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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