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공간

의정부성범죄변호사 [책과 삶]가짜뉴스에서 시작된 ‘미국 환장극’

의정부성범죄변호사 2019년 여름 미국 샌타모니카에서 마트 매니저로 일하던 ‘보이드’는 권총 한 자루와 봉투를 들고 은행을 턴다. 큰돈이 필요했던 건 아니다. 스스로 실패자로 여기는 보이드는 사고를 치고 도피하는 행위만으로도 무의미한 삶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는 자신에게 돈을 건넨 은행수납원 ‘앤지’를 충동적으로 납치해 멕시코와 미국 곳곳으로 도피 행각을 벌인다.
보이드는 왜 실패자가 됐을까. 전도유망한 신문사 기자였던 그는 더 큰 성공을 꿈꾸며 자신만의 뉴스사이트를 열고 거짓 정보를 만들어 퍼뜨렸다. 그가 만든 가짜 정보들은 사회 곳곳으로 번지면서 또 다른 거짓 정보들을 생산해냈다. 예컨대 ‘링컨은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E=mc²’ 공식이 틀렸다는 식의 거짓말을 국민 대부분이 믿게 된 것이다. 거짓 정보가 번질수록 보이드의 명성은 커졌다. 하지만 그의 장인이 보이드가 거짓말을 일삼고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고 폭로하면서 보이드는 추락했다. 가정과 사회적 지위는 물론 자아까지 잃게 됐다. 소도시 작은 마트의 매니저로 지루한 일상을 살던 그가 변화를 위해 택한 것이 강도짓이었다.
그런데 8만달러(1억여원)라는 큰돈이 사라졌음에도 언론은 조용하다. 은행 소유자 ‘더글러스’가 자신의 비자금 은닉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사건을 ‘없는 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을 쫓는 건 경찰이 아닌 앤지의 오랜 남자친구 ‘랜디’다. 앤지가 자신을 버렸다고 착각한 그는 복수를 위해 두 사람을 추적한다. 도피가 이어지고, 미쳐가는 보이드와 그나마 이성적인 앤지의 대화가 이어진다.
작가는 자신의 베트남 파병 경험을 녹인 소설 <카차토를 쫓아서>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가 21년 만에 출간한 소설 <미국 환상곡>은 물리적 전쟁 대신 미국의 ‘정보 전쟁’을 다뤘다. 특히 소설 속 경제적 풍요, 로드트립, 카지노 등 ‘아메리카 드림’ 같은 배경들 사이 보이는 가짜 뉴스의 창궐은 현재의 한국과 미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음모론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벌써 12·3 내란 1년이 코앞이다. 헌정을 수호하려는 국민의 결기와 단호한 실천이 겨우 민주공화국을 회복했지만 그 사태가 한국 민주화에 남긴 상흔은 너무나 넓고 또 깊다. 이 질곡에 대해 가장 큰 성찰과 근본적인 개혁의 과제를 감당해야 할 조직이 국군이다. 망상에 사로잡힌 통수권자에게 그 심장부가 휘둘려 내란의 도구로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국군의 오명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뿌리가 깊다. 다만 그 흑역사는 민주화의 결실로 많이 잊히거나 왜곡되었을 뿐이다. 민주화 이전 시대에 분단 체제를 배경으로 반공-승공-멸공이라는 이념의 완장을 차고 야만적 폭력의 위세를 내세워 국정의 배후로 군림한 실세가 유감스럽게도 국군이었다. 지금도 ‘종북’이라는 혐오의 깃발을 들고 ‘그들만의 자유’를 위해 ‘모두의 자유’를 위협하는 헌정 유린마저 서슴지 않는 몽상적 선동가들과 그 추종자들이 어쩌면 그 시대의 유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내란 사태는 국군의 이름으로 공권력의 사유화를 획책했던 실체를 분명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희망의 씨앗을 뿌렸다. 바로 국군의 허상과 실상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국군의 허상은 그동안 그 얼굴로 자처했지만 무도한 통수권자에게 속절없이 휘둘리거나 부화뇌동했던 국군의 수뇌부이고, 그 실상은 이들의 위법하고 부당한 명령에 저항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허상의 헛된 꿈을 무너뜨린 국군의 몸통이다.
근현대사의 권위주의 체제에서 절대 권력의 숙주는 흔히들 ‘군부’나 ‘신군부’로 불렸는데 이제 그 호명이 옳았음이 증명된 셈이다. 그러니까 국군의 오명은 사실 하나회나 충암파와 같은 사조직으로 상징되는 군부가 감당하는 게 마땅하다. 이름을 강탈당했을 뿐 실제로는 그 몸통으로 남아 있던 국군은 이제 수치스러운 오명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이번 내란 사태에 민주공화국을 지켜낸 영웅들은 그 심야에 국회로 달려가 헌정을 지켰던 일반 시민들만이 아니다. 영문도 모르고 동원되었지만 시민의 생명과 신체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당혹과 굴욕마저 감내해야 했거나, 그 현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국헌 문란의 순간에 휴전선에서 한반도의 남단 끝자락까지 변함없이 방위한 국민의 장병들도 있었다.
내란을 극복하고 헌법 가치를 정착시키기 위한 국군의 성찰과 개혁이 시작해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헌법이 명령하는 국군의 사명을 전군이 다시 한번 분명히 체화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적 정체성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되 ‘평화적’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것이다. 헌법은 국군에 이러한 평화주의의 선봉에서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고, 그 실천적 과제가 정치적 중립성의 준수임을 선언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군이 헌법적 사명을 체화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있었는지 처음부터 다시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 바로 그 기본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기에 통수권자와 얼치기 정치군인들이 국군의 명예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망발을 사전에 통제하는 데 실패했을 수 있다. 따라서 당장 현실에 맞닥뜨린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망동들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구체적 제도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법·부당한 명령에 대응할 수 있는 법적 지위를 확보하는 방안이나 항명죄에 대응해 헌법이나 법률에 어긋나는 명령을 내린 상관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대책이 꼭 필요하다. 계엄법이나 군사법제도를 민주공화 헌법의 원리에 걸맞게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국군이 국가의 군대라는 기능적 차원을 넘어 진정한 국민의 군대로 거듭나기 위해 군정과 군령에 민주적 통제를 확고히 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요청된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국군의 조직이나 기본 활동의 기초가 될 국군의 헌법적 사명을 분명히 정립하고 실천하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이번 내란이 국군의 몸통이 아니라 군통수권자와 국방부 장관의 일탈과 군 지휘부의 부화뇌동에 근본적 책임이 있다는 점을 직시하고 전군은 물론 군통수권자와 일반 공직사회, 나아가 전체 사회가 국군의 사명을 일상적 활동에서 지속적으로 환기하는 의례 등 병영 및 사회의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민과 군이 모두 합심해 헌법적 사명에 충실한 국군의 정체성이 전군과 사회에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여성과 남성이 장갑차 위에 올라가 바이올린과 기타를 연주한다. 아일랜드 춤곡 ‘Haste to the Wedding’(결혼식에 종종걸음으로)의 선율이 퍼진다.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보안요원이 제지하지만 연주는 5분가량 이어진다. 그 옆에선 여성 3명이 “전쟁장사 중단하라”고 외친다.
2022년 9월 일산 킨텍스 대한민국방위산업전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들은 ‘위력(威力)’을 행사해 무기전시회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 4월15일 대법원은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로 판결했다. “음악은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상징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비폭력적 수단”이며 “국가 방위산업에 관한 사항은 공적 관심사”이므로 “감시와 비판을 위한 표현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사회가 더 이상 12·3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할 때, 나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 판결에도 주목했다. 하지만 순진한 기대였다. ‘군대 남성성’을 체화한 내란 수괴가 감옥에 갔지만, 그의 ‘무기에 대한 맹신’은 남았다.
‘방산’을 AI·반도체와 더불어 ‘미래 먹거리’라고 한 대통령 이재명은 올해 서울국제항공우주·방위산업전시회에서 “자랑스러운 ‘K방산’의 눈부신 성과”를 말했다. 이 자리엔 가자지구 학살에 쓰인 이스라엘 무기도 전시됐다. 항의 시위를 한 활동가들은 경찰에 의해 쫓겨났다.
이재명 정부가 이례적인 건 아니다. 전 대통령 문재인도 ‘방산수출 100억달러’ 달성을 큰 성과로 꼽았다. 군의 무기를 고도화하기 위해 민간의 참여가 필요한데, 기업의 수지타산을 맞추려면 국내 수요만으론 안 되고 해외로 무기수출을 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누군가 그 무기에 죽더라도 ‘우리’만 안전해진다면 괜찮다는 얘기이다. 윤석열은 문재인의 다른 정책은 뒤집어도 무기수출은 충실히 계승했다. 이 문제에는 진영을 뛰어넘는 합의가 있는 것이다. ‘과잉 전력’에 ‘돈 먹는 하마’ 비판을 받는 핵추진 잠수함에 대한 정권을 초월한 집착도 그런 점에서 설명된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지적처럼 “무기수출은 다른 분야의 성장, 수출과 다르다” “군사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 한국 재벌이 참여하는 것”일 뿐 무기수출에서 한국적 가치를 찾기는 어렵다. 굳이 찾자면 무기업체들이 강조하는 ‘가성비’가 있다. 그 뒤엔 ‘위험의 외주화, 이주화’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사람 죽이는 도구에서 가성비란 말을, 대놓고 자랑할 건 아니다.
경주 APEC을 앞두고 야구 중계 도중 국내 무기업체의 잠수함 광고가 나왔다. 잠수함을 구매할 시청자는 없을 텐데 도대체 뭘까. 광고 후 ‘남초 사이트’의 뜨거운 반응을 보며 분명해진 게 있다. 이른바 ‘밀덕’ 감수성이 주류화되는 분위기를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한국 음악이나 음식이 널리 알려져 뿌듯하다’는 느낌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각종 ‘K’에 편승해 무기산업까지 그런 지위를 얻으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군비경쟁으로 몰려가는 힘이 강력하며, 핵국가 북한을 마주한 한국에서 안보에 손 놓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외교와 국방의 다양한 수단을 어떻게 배합할지, 군대가 어떤 무기를 어느 정도 갖출지 정할 때 ‘안보 포퓰리즘’에 기댈 게 아니라 전체 예산 배분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토론, 지정학 여건에 대한 냉정한 분석을 통해 적정선을 찾아야 한다. 그 선은 공멸적 군비경쟁에 기름을 붓지 않는 한도 내에서 긋는 게 바람직하다. 북한 GDP의 1.7배를 국방비에 쓰는 한국은 이미 충분한 ‘강병’을 가진 ‘부국’이다. 아무리 비싼 무기를 더 갖춰도 안보 불안을 완전히 없앨 순 없다. 불안 해소책은 이재명 정부가 잘한다고 평가받는 외교에서 더 찾아야 한다.
모두가 국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는 없다. 평화를 위해, 국가의 눈높이에서 보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장갑차를 올려다보며 잠시 망설였던 한 예술가의 말에서 가능성을 찾고 싶다. “많은 사람이 장갑차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잠시 두려워졌다. 내가 올라간다고 해서 저 거대한 힘의 흐름이 당장 바뀌는 것은 아닌데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무모한 짓은 아닐까. 다시 눈을 감는다. 무기로 죽어간 수많은 사람과 생명들의 빼앗긴 이름과, 얼굴과, 삶과, 눈물을 생각한다. 다시 눈을 뜨니, 이제 내 눈에는 장갑차만 보였다. 디디어 올라갈 바퀴와 손잡이가 뚜렷하게 길을 내주고 있었다.”
‘K방산’이라는 말,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믿는 기자들부터 쓰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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