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공간
폰테크 하는법 남영동 대공분실이 컨템포러리 무용의 무대로 바뀐 이유는
- 이길중
- 25-06-22
- 129 회
이 7층짜리 검은 벽돌 건물은 지난 12일 저녁 미디어 파사드로 변했다. 반복적인 파동으로 시작된 움직임이 하나둘 사람의 형상으로 변하더니 기념관 마당에서 건물을 마주한 시민들에게로 걸어왔다. 개관 기념 무용 공연 <민주주의에 말을 걸다>의 프롤로그, 역사의 아픈 기억을 넘어 ‘살아있는 민주주의 무대’가 되려하는 대공분실 내부로의 초대였다.
검은 벽돌은 ‘공간 사옥’으로 대표되는 김수근 건축의 조형적 특징이다.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은 ‘탱크 굴러가는 소리가 나던’ 두꺼운 철문과, ‘방향 감각을 잃게 하는’ 나선형 계단이 가져다 준 공포를 증언했다. 일반 건물보다 좁은 복도와 천장고 역시 김수근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는데, ‘고문 공장’이었던 대공분실과 어우러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날 공연은 이러한 대공분실 공간 자체를 무대로 삼았다. 조로 나뉜 관객들은 건물을 오르내리며 조사실, 회의실, 복도 등 5개 공간에서 이 곳에 얽힌 기억들을 몸의 언어로 풀어내는 무용수들과 맞닥뜨렸다.
그 중 바깥에서 봤을 때 좁은 직사각 창문만 배열된 5층에는 15개의 조사실이 있었다. 이 곳 515호는 1985년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이었던 김근태 전 의원이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고문을 당했던 공간. 이 무대에 붙여진 표제는 ‘어느 날개의 기억’이다. 천장에는 잿빛 새 모형이 걸렸고, 그 아래에서 여성 무용수는 깊은 호흡으로 담담한 몸짓을 이어갔다. 무용수의 허공을 바라보는 처연한 시선은 아득한 절망감 그리고 자유의지 같은 것을 떠올리게 했다.
관객들은 무용수 주변에 둘러서서 근육의 움직임, 몸짓에서 나는 소리와 호흡을 생생하게 느꼈다. 몸짓이 펼쳐지는 조사실 내부에 주홍빛 타일이 매끈하게 마감된 화장실이나 연행자 전용 입구였다는 건물 후면 출입문의 유려한 곡선은 기이하게도 아름다웠다. 당대 최고 건축가의 미감이 녹아있는 잔혹한 고문 공간이라는 중첩된 역사의 층위를 느끼며 관객들은 나선형 계단을 돌아 건물 바깥으로 나왔다.
안무가 최상철은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공간 자체를 하나의 ‘서사적 주체’이자 내러티브의 축으로 삼아 동시대 젊은 예술가들의 신체 언어와 컨템포러리 댄스 어법으로 풀어내는 장소특정형 공연”이라고 의도를 설명했다.
지난달 말 개관에 앞서 공연된 연극 <미궁의 설계자>도 극중 사건이 일어났던 바로 그 공간인 대공분실에서 펼쳐졌다. 이 공간의 설계자인 김수근의 책임을 묻는 내용인데, 이 역시 관객이동형 장소특정 연극으로 선보였다.
두 공연 모두 공간이 가지는 의미가 큰 장소를 관객들이 경험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민주화 운동에서 떠올리게 되는 민중미술의 이미지나 살풀이춤과 같은 고정관념을 넘어 현대적인 공연으로 풀어낸 것도 눈에 띄는 점이다.
김남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홍보기획팀장은 “40여년 전 민주화 운동을 현재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젊은 세대가 민주주의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은 해외에서 흥행한 관객 몰입형(이머시브) 연극 <슬립 노 모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작품은 관객들이 호텔 방을 오가며 공연을 관람하게 되는데, 기념관으로 새로 출발하는 대공분실이라는 역사적 공간을 시민들이 감각하는데 알맞은 접근이었던 셈이다. 무용 공연을 시작하며 검은 벽돌 건물에 빛을 쏴 미디어 파사드로 변모시킨 것도 멈춰있던 건물을 살아 숨쉬게 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공연 신청은 20~40대가 가장 많았고, 고등학생 관객도 있었다.
기념관은 ‘시민들이 찾아오게 하는 공간’을 목표로 향후 공연과 전시의 방향을 가다듬고 있다. 고문피해자였던 <어느 돌멩이의 외침>의 저자 유동우씨는 공연에 앞서 이러한 바람을 전했다. “역사는 묻지 않으면 답하지 않죠. 이 역사가 어떤 역사였는지 묻고, 어떻게 할지 해답을 얻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8세 소녀 타라 하지미리는 포크댄스와 체조를 좋아했다. 어찌나 좋아했던지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가장 가기 싫어하는 치과에서도 춤을 출 정도였다. 소셜미디어에선 소녀가 빨간 드레스를 입고 사뿐이 춤을 추며 진료실에 들어가는 영상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이 소녀는 지난 14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이란 테헤란의 아파트 단지를 공습할 때 주민 60명과 함께 사망했다.
24세 시인인 파르시아 아바시의 가족은 약 6개월 전 ‘방 3칸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이뤘다. 아바시의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각 방을 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오랫동안 알뜰살뜰 모아온 끝에 테헤란에 있는 고층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13일 그들의 평생 꿈이었던 아파트는 이스라엘의 미사일에 맞아 붕괴됐고, 아바시는 부모님과 함께 그 아래 깔려 숨졌다.
18일 뉴욕타임스(NYT)는 하지미리와 아바시 가족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전쟁이 시작된 후 갑작스럽게 삶이 끝나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매일마다 새로 쌓여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 보건부는 이스라엘의 공격이 시작된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최소 224명이 사망하고 2000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이 중 90%는 민간인이라고 발표했다. 이란 정부는 15일 이후 사상자 수를 업데이트하지 않고 있다.
이란의 유명 언론인이자 여성 인권 운동가인 질라 바니야구브는 “이스라엘의 (군 수뇌부) 표적 암살보다 민간인 사상자가 훨씬 더 많은데도, 다들 군사적 목표에만 관심을 쏟을 뿐 이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NYT는 현재 이란 전역의 묘지에서는 매일 엄숙한 장례식이 거행되고 있으며, 그 순간에도 장례식 배경처럼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란에서 빚어지는 참극으로 잊힌 곳이 있다. 이란·이스라엘 분쟁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이 순간에도 가자지구에서는 여전히 민간인이 죽어가고 있다.
지난 17일 가자지구 남부 도시 칸유니스에서 미국 구호단체 가자인도주의재단(GHF)의 식량 배급소로 몰려든 굶주린 주민들에게 이스라엘 군이 총격을 가해 최소 70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알자지라가 보도했다. 전날에는 남부도시 라파와 중부의 GHF 배급소 등에서 총격이 발생해 최소 38명이 숨졌다.
GHF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가자 구호물자 배급 창구를 일원화하겠다며 설립한 곳이다. 하지만 지난달 식량 배급소 운영을 시작한 이래 거의 매일 인근에서 총격과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하마스 측은 GHF가 운영을 시작한 3주 동안 배급소 인근에서 최소 300명이 숨지고 2600명이 다쳤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은 “의심스러운 자들이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경고 사격을 포함한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생존자들은 “희생자는 모두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들이었다”면서 “이스라엘군은 사람들이 도망치는 동안에도 계속 총격을 가했다”고 알자지라에 말했다. 알자지라는 나세르 병원 관계자를 인용해 “사람들의 몸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신원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병원에서 형제와 조카를 찾고 있던 사마헤르 메크다드는 “우리는 이제 밀가루도, 음식도 필요 없다”며 “그들은 왜 우리에게 총을 쐈을까? 우리는 인간이 아니니까”라고 AP통신에 말했다.
전쟁은 피의 피를 부른다. 이스라엘의 민간인들 역시 이 참혹한 전쟁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 이스라엘 매체 하레츠 등은 19일 오전 이스라엘 남부 베르셰바의 소로카 병원이 이란의 미사일에 피격됐다고 보도했다. 소로카 병원은 1000개 넘는 병상을 보유한 대형 의료 시설로 이스라엘 남부 주민 100만여명이 이용하는 곳이다. BBC는 미사일 공격으로 여러 병동이 완전히 파괴됐고 천장이 무너져 내리면서 271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백혈병 치료를 받기 위해 이스라엘로 이주한 우크라이나 출신 7세 소녀도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 언론 와이넷은 지난 15일 이란이 바트얌 아파트 단지를 공습하면서 발생한 희생자 명단에 7세 나스티아 보릭과 그의 할머니 레나 페슈쿠로바(60), 보릭의 사촌 콘스탄틴 토트비치(9)와 일리야 페슈쿠로프(13) 등 일가족 네 명 이름이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보릭은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남부 도시 오데사에서 살다가 2022년 12월 백혈병 치료를 받기 위해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전쟁을 피해 이스라엘로 온 보릭은 결국 이스라엘과 이란 간 군사적 충돌의 희생양이 됐다.
바트얌 아파트 단지 희생자 명단에는 90세의 벨라 아슈케나지도 포함됐다. 공습 사이렌이 울렸지만,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데다 거동이 불편한 벨라와 보행기를 타야 하는 그의 남편은 공동 대피소로 이동할 수 없었다. 부모님을 놓고 혼자 도망갈 수 없었던 아들이 옆을 지켰지만 결국 벨라는 살아남지 못했다.
‘3특검’ 정식 출범 임박하자직무유기 비판 부담 느낀 듯
이재명 정부 ‘개혁’ 예고에각자 살길 찾으려는 모양새
내란·김건희·채 상병 특검 출범이 임박하자 이 사건들을 원래 맡았던 기관들이 갑자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의 부실수사 의혹을 비롯해 각 수사기관의 내란 사건 연루 등이 제기된 상태에서 부진했던 수사를 만회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수사기관 개혁을 예고한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서 서로 경쟁하며 각자 살길을 찾으려 나선 것으로 보인다.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최근 경쟁하듯이 압수수색, 관련자 소환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이 제대로 수사하지 못해 특검이 출범하게 됐지만 특검에 넘기기 전에 최대한 막판 수사를 하고 있다.
검찰은 김건희 여사 관련 수사를 하느라 분주하다. 서울중앙지검 명태균 의혹 전담수사팀은 김 여사에게 세 번째 소환을 통보했다. 앞서 두 차례 소환 요구는 김 여사가 불응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을 재수사하는 서울고검 형사부도 김 여사에게 소환조사를 통보했다. 그러자 김 여사는 출석해야 할 당일인 지난 16일 우울증을 이유로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다. 서울고검 수사팀은 전 수사팀이 4년여 동안 확보하지 못했던 김 여사의 주가조작 인식 정황이 담긴 녹음파일을 새롭게 압수했다. 검찰은 두 사건 수사 모두에서 늑장·부실 수사 비판을 받고 있다.
경찰은 12·3 불법계엄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은 윤 전 대통령의 공수처 체포영장 집행 저지 및 경호처 동원 증거인멸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대통령실 비화폰 기록을 압수했다. 여세를 몰아 윤 전 대통령에게 세 차례 소환을 통보했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을 다루는 공수처는 최근 군 관계자를 소환조사하며 2년 가까이 지연된 수사에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공수처는 내란 수사 과정에 수사력 부족을 비판받은 바 있다.
세 기관 모두 조직 자체가 흔들리는 위기 속에서 특검 출범을 앞두자 제각각 막판 스퍼트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조직 내부 기강을 다잡고 위기감을 돌파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역설적이게도 세 기관은 수사관 등 파견 형식으로 특검에서 서로 마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검에서의 활동에 따라 향후 조직의 명운도 갈릴 수 있다. 수사·기소 분리 원칙의 검찰개혁 등을 예고한 이재명 정부에서 기관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검찰은 더 가열차게 수사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도 지금이 ‘검찰을 넘어설 기회’라 보고 성과를 내려 집중하는 분위기다. 공수처도 위상 재정립을 목표로 “최대한 특검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했다. 이창민 변호사는 “소극적으로 진행되던 수사가 특검을 앞두고 속도를 내는 건 직무유기를 피하려는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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