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공간

원초적 블루 아가베, 섬세한 스모키향의 조화…테킬라 ‘블랑코 아후마도’ 국내 상륙

멕시코 테킬라 브랜드 ‘클라세 아줄’이 섬세한 스모키향을 가진 프리미엄 테킬라 신제품 ‘블랑코 아후마도(Blanco Ahumado)’를 국내 공식 출시했다.
‘블랑코 아후마도’는 불의 열기로 아가베를 오랜 시간 굽는 멕시코의 전통적인 메즈칼 제조공법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블랑코 아후마도라는 이름은 증류 후 2개월 미만의 숙성을 거친 테킬라 등급인 ‘블랑코’와 불에 그을린 스모키한 향을 의미하는 에스파냐어 ‘아후마도’를 결합한 것. 블랑코 테킬라가 선사하는 블루 아가베 본연의 맑고 순수한 맛과 메즈칼 특유의 스모키한 캐릭터가 조화를 이루는 독창적인 풍미가 특징이다.
클라세 아줄의 마스터 디스틸러 비리 디아나 티노코(Viridiana Tinoco)는 “스모키한 풍미를 표현하기 위해 전통적인 메즈칼 제조방식의 정수를 담되, 블루 아가베의 고유한 특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각 공정을 새롭게 재해석했다”라고 말했다.
신제품 블랑코 아후마도는 오는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서울 바앤스피릿쇼’에서 일반 대중에게 최초로 공개된다. 가격(750㎖ 용량)은 50만원 후반~60만원 초반대다. 초기 물량에 한해 신제품 출시를 기념하는 한정판 케이스도 만나볼 수 있다.
클라세 아줄은 블랑코 아후마도의 국내 출시를 기념해 박람회 기간 동안 총 30병 한정 수량을 특별 할인가로 판매한다. 이와 함께 테킬라 5종(플라타, 레포사도, 골드, 아네호, 울트라)과 메즈칼 3종(듀랑고, 게레로, 산루이스 포토시)을 포함한 클라세 아줄의 전체 라인업을 최저가로 선보일 예정이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게스트 바텐딩도 진행된다. 25~26일에는 클라세 아줄 아시아 칵테일 앰배서더인 유지로 키요사키 바텐더가, 27일에는 ‘월드클래스 코리아 2022’ 우승자이자 클라세 아줄 코리아 앰배서더 유민국 바텐더가 블랑코 아후마도, 플라타, 레포사도 테킬라를 활용한 2종의 한정판 칵테일을 선보인다. 2종 모두 하루 30잔 한정 판매된다.
‘글 쓰는 의사’라는 말을 들으면, 상당수 사람들은 남궁인의 이름을 떠올릴 것이다. 남궁인(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부서지거나 정신을 잃고 응급실을 찾은 사람들을 치료하며 느낀 것들을 꾸준히 글로 써왔다. <만약은 없다> <지독한 하루> 등의 산문집은 그가 응급실을 토대로 기록한 삶의 장면들이다.
그가 이번에는 색다른 책을 들고 돌아왔다. 남궁 작가의 다섯 번째 단독 저서인 <몸, 내 안의 우주>(문학동네)는 에세이가 아닌 의학 교양서다. 책은 응급의학과 의사 1인칭 시점에서 쓰였다. 응급실에 방문하는 환자들의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면서, 소화·심장·호흡 등 우리 몸의 기관과 기능에 대한 설명을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풀어간다. 지난 16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남궁 작가를 만나 집필기를 들어봤다.
<몸, 내 안의 우주>는 5년 3개월 만에 나온 남궁 작가의 단독 저서다. 그는 코로나19 시기를 겪으면서 “사람들에게 몸에 관한 지식을 깔끔하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의학 교양서를 써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코로나19 유행 초반에 사람들이 병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혼란스러워했는데, 제가 알고 있는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서 SNS에 올렸어요. 그게 엄청나게 전파가 되면서 화제가 됐어요. 알고 보면 의학지식이라는 게 크게 어려운 것이 아닌데, 이론을 조금만 더 알고 보면 자기 몸에 대해 의사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그는 책에 “환자 대부분은 스스로가 절묘한 치유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몸은 이미 완성된 완벽한 우주에 가깝다”고 적었다. “환자라는 은하에만 앉아 있는 사람들을 우주 반대편으로 이끌고 싶었다”고 표현했다. 책에 <몸, 내 안의 우주>라는 제목이 붙은 이유다.
오래 걸릴 것이라 예상하긴 했으나, 집필 작업에 걸린 기간은 생각보다도 더 길었다. 구상에만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초반에는 두꺼운 의학 교과서 수십 권을 일일이 찾아서 비교하면서 책에 넣을 내용을 고르고 또 골랐다.
이후에는 ‘덜어냄’과의 싸움이었다. 지금보다 2배 분량으로 쓴 원고를 반으로 뚝 잘라 줄이기도 하고, 한 챕터를 새로 쓰다시피 하는 일도 많았다. 3년 6개월간 글쓰기에 매달렸다. 남궁 작가는 “공부를 다 한 다음에 한 파트씩 쓰기 시작했는데, 매 파트가 고역이었다”고 말했다. “‘앎’을 줄여내는 것, 자르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초고를 현재 분량의 두 배로 쓴 다음에 1, 2권으로 나눠서 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며 출판사 대표님을 찾아갔어요. 대표님이 ‘이것은 대중을 보라고 쓴 책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라고 하셨죠. 돌아와서 1년 동안 반을 덜어냈어요.”
의학지식을 억지로 쉽게 만들 수는 없었지만, 쉽고 재밌게 읽힐 수 있게 만들 수는 있었다. ‘그래, 난 에세이 작가고 내가 제일 잘하는 건 스토리텔링이다. 이걸 발휘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한 번쯤은 이 질환으로 응급실을 찾아봤을 법한 질환들을 군데군데 배치하고, 환자와 그를 둘러싼 병원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치 드라마처럼 짜서 넣었다. 작가 본인도 내려놓았다. 책 속의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정크 푸드를 먹고, 크리스마스에 커플을 보면서 쓸쓸해 하고, 실패한 농담을 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저한테 막말하는 간호사 같은 것은 짜인 설정인데, 나머지는 대부분 사실이에요. 불닭볶음면을 먹고 위경련으로 응급실에 온다거나, 운동하다가 횡문근융해증으로 오는 케이스들은 실제로 매우 흔해요. 제가 설명하려는 해당 장기와 관련해서 응급실에 올 수 있는 가장 흔한 케이스들을 모조리 등장시켰죠.”
사실 응급실은 많은 이들에게 두려우면서도 흥미로운 장소다. 사람들이 의사 남궁인을 만났을 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질문보다는 본인이 겪었던 응급실 경험을 가장 많이 이야기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아파서 지르는 소리로 가득 차 있고, 누군가 죽기도 하는 응급실이라는 공간에 앉아있다는 것 자체가 사람에게 굉장히 강렬한 기억이기 때문에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그에게 응급실은 치열한 일터 이상의 고통스러운 노동의 현장이었다. 의·정갈등으로 응급실에서만 전공의 4명이 사직하고, 배후진료를 맡아줄 다른 전공의들도 병원을 떠났다. 최소 1인 5역의 초인적인 진료량과 잦은 당직 근무를 소화해야 했다. 누적된 과로로 인해 지난해 디스크와 함께 한쪽 눈 시력 저하까지 생겼다. 그래도 집에 와서 글을 썼다.
그에게 글쓰기의 의미를 물었다. “재미를 넘어 의미를 좀 더 찾아보고자 하게 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직도 글을 쓰면 너무 재밌어요. 젊은 독자들이 제 글 속의 유머를 보고서 ‘삼촌이 위험한 농담하는 것 같다’는 평도 남기는데, 제 유머가 성공한 것 같을 때 너무 기쁘거든요.
글을 쓰다 보니 의사로서 사람을 이롭게 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점점 생겼어요. 글쓰기로 사람들에게 지식을 알리고, 세상을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다는 힘을 좀 믿게 되었거든요. 진료실 밖에서도 환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기여할 수 있을까, 이 책도 그런 응답의 일부입니다.”
정영애 전 여성가족부 장관(사진)이 보좌진 갑질 의혹이 불거진 강선우 여가부 장관 후보자가 과거 지역구 민원을 해결해주지 않자 여가부 예산을 삭감하는 갑질을 했다고 주장했다.
21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정 전 장관은 전날 지인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강선우 의원 관련 보도가 심상치 않아 제가 여가부 장관이었을 때 있었던 일을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다”며 이 같은 내용의 입장문을 공유했다.
정 전 장관은 입장문에서 강 후보자가 당시 본인의 지역구에 해바라기센터(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피해자를 위한 통합 지원기관)를 설치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적었다. 이에 센터 설치에 필요한 산부인과 의사를 확보하기 위해 해당 지역 이대서울병원의 이대 총장에게 문의했지만 “다음 기회에 꼭 협조하겠다”는 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정 전 장관은 “그 내용을 강 의원에게 전달하니 ‘하라면 하는 거지 무슨 말이 많냐’고 화를 내고 여가부 기획조정실 예산 일부를 삭감했다”며 “결국 의원실에 가서 사과하고, 한 소리 듣고 예산을 살렸던 기억이 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부처 장관에게도 지역구 민원 해결 못했다고 관련도 없는 예산을 삭감하는 등의 갑질을 하는 의원을 다시 여가부 장관으로 보낸다니 정말 기가 막힌다”고 비판했다.
기자는 강 후보자와 인사청문준비단에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입장을 물었지만 답변이 없었다.
정 전 장관은 지난 14일 강 후보자 인사청문회 중에 해당 입장문을 작성해 청문위원에게 보냈지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전날 이재명 대통령의 강 후보자 임명 강행 방침이 알려지자 지인들에게 입장문을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전 장관은 “민주정부 4기의 성공을 희망하는 저의 진의를 잘 살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국내 1호 여성학 박사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때인 2020~2022년 여가부 장관을 지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르면 20일 여러 의혹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장관 후보자의 거취에 관해 판단을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4일 시작한 이재명 정부 1기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마무리 국면에 들어간 상황에서, 일부 후보자들의 자진 사퇴 또는 대통령의 지명 철회가 이루어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임명 강행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이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하든 정치적 파장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19일 기자단 공지를 통해 “인사청문회와 관련한 대통령실 내부 보고 및 관련 후속 논의는 내일(20일) 있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내부 보고의 주 대상이 되는 인사는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와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추려진다. 이 대통령은 전날 정성호 법무부·구윤철 기획재정부·조현 외교부·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임명안을 재가했다. 대통령실은 인사청문회를 마친 나머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는 강 후보자와 이 후보자를 제외하면 이 대통령이 임명을 고심할 만큼의 결정적인 흠결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20일로 예정된 내부 보고에서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해 대통령에게 종합적인 보고를 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난 17일 브리핑에서 “대통령실은 다른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가 진행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청문회가 마무리되는 금요일(18일) 이후 대통령께 전체적인 상황을 종합 보고할 계획”이라며 “종합 보고 이후 대통령께서 인사권자로서 일정한 판단을 하실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이어 “대통령은 다양한 통로로 여론을 청취하고 있고, 실제로 청문회 과정에서 나온 여러 쟁점에 대해 일일 보고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14일 인사청문회를 마친 강선우 여가부 장관 후보자는 보좌진을 상대로 한 갑질 의혹과 이에 대한 거짓 해명 논란으로 여권 내부와 시민사회단체에서까지 임명 반대 여론이 높아진 상태다.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 역시 지난 16일 인사청문회를 마쳤지만, 자녀 불법 조기유학과 제자 논문 표절 논란 등으로 ‘교육 수장’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 교육계 안팎에서 제기된 상황이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이 후보자가 교육 현안이나 정책에 대한 숙지가 부족하다는 자질론까지 대두됐다.
그동안 대통령실은 대외적으로 ‘인사청문회를 지켜본 뒤 검토해 판단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하면서 여론의 추이를 주시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일곱 살 내게 우상이 생겼다. 구두쇠 엄마를 몇날 며칠 졸라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앨범을 손에 넣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카세트로 서태지 음악을 틀어댔다.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 누군가가 나를 떠나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는 안무를 따라 하며 하루에도 수십 번 서태지 흉내를 냈다. 집에 손님이 오면 서태지가 되어 노래와 안무를 뽐냈다. 내가 하도 서태지를 좋아하자 서울 사는 이모는 당시 서태지가 자주 착용했던 모자와 비슷한 베레모를 선물했다. 나는 신이 나서 모자를 쓰고 다녔다. 잘 때조차 그 모자를 벗지 않았다. 누구도 모자에 손대지 못하게 했다. 모자에 달린 가격표는 절대 떼서는 안 되었다. 서태지가 그렇게 쓰고 다녔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의 돋보기를 훔쳐 쓰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난 알아요’를 쉴 새 없이 외쳤다. 도수가 맞지 않는 돋보기가 어질어질 현기증을 일으켰다. 대롱대롱 매달린 가격표가 내 멋의 정점이었다. 종이로 된 가격표가 바람에 날리며 모서리로 내 얼굴을 찔러 댔다. 세차를 하고 있는 친척 오빠 앞에서 서태지를 보여 주었다. 오빠는 낄낄 웃으며 서태지 아니고 ‘수퇘지’라고 나를 골려 댔다. 나는 약이 올라 오빠를 흘겨봤다. 마실을 다녀오던 외할아버지가 다가와 내게서 돋보기를 벗겨 냈다. 어른 물건을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된다는 꾸지람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내가 혼이 나는 중에도 오빠는 계속 수퇘지 타령을 하며 나를 놀렸다. 씩씩대며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노리고 있던 건지 가위를 들고 다가와 내 모자에 매달린 가격표를 싹둑 잘라 버렸다. 순식간에 당한 뺑소니였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마음이 무너졌다. 정말 내가 수퇘지가 돼버린 것 같았다.
중학생 때 봉사활동 간 시설서 맡은 절망의 냄새…이듬해 장애 판정을 받고 그 냄새에 갇혀 살았다그 후 서태지의 “울트라맨이야”를 주문처럼 부르며 결심했다, 어떻게든 일어서 살아가기로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들었다. 그렇게 아꼈던 모자가 더는 서태지스럽지 않았다. 나는 모자를 내팽개치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세상이 끝난 것처럼 엉엉 울었다. 내가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엄마가 다시 실로 가격표를 엮어 모자에 달아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모자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모자와 가격표가 분리되는 순간 모자는 그저 평범한 베레모가 되었다. 그러자 서태지를 향한 마음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흥이 식어 버리자 “난 알아요”가 나오지 않았다. 보물처럼 여겼던 서태지 카세트테이프에 먼지가 앉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를 선언하기도 전에 나는 팬을 은퇴했다.
그즈음 동네에 길을 잃은 낯선 이들이 방문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들은 대다수가 노인이었고 바싹 말라 행색이 초라했다. 자신들이 찾아가는 곳이 어딘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단지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시설이라는 정보만 가지고 근교를 헤매고 다녔다. 하지만 동네 어른들은 그들의 목적지가 어딘지 알았다. 시내와 떨어진 외딴 터에 양로원과 종교시설이 들어섰다. 시설을 향한 주민들의 인식은 좋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시골 노인들에게 양로원은 자식들이 부모를 고려장 시키는 곳이었다. 행려병자나 장애인들이 전국에서 그 시설로 모여들었다.
내가 시설에 방문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체험 학습 때였다. 학교는 일 년에 한두 번은 시설을 방문해 견학을 시켰다. 그곳에 도착하면 우리는 커다란 강당에서 영상물을 시청해야 했다. 내용은 다리 밑에서 장애인을 돌보던 한 남자의 일생이었다. 마당에는 그의 동상도 있었다. 시설은 가톨릭 신부의 도움으로 확장되었다. 거대한 부지에 건물들이 계속 들어섰다. 나는 매해 그곳을 방문하며 그 과정을 보았다.
90년대 말 금융위기가 나라를 흔들었다. 간혹 땟국물 줄줄 흐르는 장발의 남자가 동네를 돌며 쌀을 구걸하고 다녔다. 어른들은 시설에서 시킨 것 아니냐며 수군댔다. 소문으로는 시설 앞에 매일 아침 노인들과 장애인들이 버려진다고 했다. 터무니없는 루머는 아니었다.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주기적으로 순서를 정해 시설로 봉사활동을 보냈다. 주로 양로원에 배치되어 식사 배식을 돕고 건물 청소를 했다. 봉사활동 전 영상물을 시청하는 것도 여전했다.
양로원은 본관에서 언덕을 넘어가야 했다. 부지는 나날이 넓어지고 없던 건물이 새롭게 들어섰다. 무표정한 수녀님들이 감시하듯 우리를 내다봤다. 양로원에 도착했다. 사실 우리가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어린 학생들에게 시킬 일이 뭐 그리 많겠는가. 그저 명목상 봉사활동이었을 뿐이다. 인솔 교사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밀폐된 공간에서는 표백제와 노인들의 체취가 뒤섞인 냄새가 났다. 날카로운 악취가 미간을 꾹 찔렀다. 나는 숨을 참았다. 코를 쥔 동급생들도 있었고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애들도 있었다. 이상스럽게 창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방마다 깡마른 노인들이 빈 동공으로 방문자를 흘깃 살폈다. 어디선가 텔레비전 소리가 흘러나왔다.
봉사자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손걸레를 들고 다니며 청소를 했다. 우물쭈물 눈치만 살피고 있는데 점심 배식이 시작되었다. 우두커니 서 있던 학생들에게도 할 일이 생겼다. 반찬은 기억나지 않지만 국은 멀건 된장국이었다. 오염된 공기 중에 음식 냄새까지 더해지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봉사자 아주머니들이 능숙하게 배식 지시를 했다. 식판을 받아 노인들에게 배달했다. 어느 방에서 다리가 없는 남자가 두 팔로 기어 나와 식판에 코를 박고 된장국을 떠먹었다. 그의 입에서 침과 국물이 뒤섞여 주르륵 흘렀다. 나는 식판을 나르는 척하다가 밖으로 도망쳤다. 음식 냄새를 맡으니 속이 뒤집혔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처럼 신물이 올라왔다. 코에서 표백제와 된장국 냄새가 떠나질 않았다. 속이 진정되지 않아 싸갔던 김밥도 먹지 않고 자판기에서 콜라만 뽑아 마셨다. 그날 이후로 한동안 나는 된장이 들어간 음식을 먹지 못했다. 된장 냄새만 맡아도 표백제 냄새가 나며 속이 뒤집히고 구역질이 났다.
이듬해 나는 장애 판정을 받았다. 청천벽력 같은 현실을 도무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시각 장애인이 될 거라고? 내가 왜?’
절망의 올가미가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조여 댔다. 무지했던 나는 완전히 실명하게 되면 평생을 시설에 수용돼서 표백제 냄새가 밴 흙탕물 같던 된장국이나 마시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참한 미래가 예상되자 하루하루가 절망스러웠다.
2000년 서태지가 ‘울트라맨’을 외쳤다. 나는 그 노래가 세상을 저주하는 주문처럼 들렸다. 한때 우상이었던 그가 또다시 유일한 구원자였다.
“울트라맨. 어렸을 적 내 꿈은 울트라맨…”
복잡한 머릿속과 마음을 털어내고 싶었다. 기도문처럼 울트라맨을 불렀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 진정됐다.
엄마는 내가 고등학교를 장애인학교로 진학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품에 끼고 있다가 본인이 죽으면 어디 시설에 들어가든지 형제들에게 의탁해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암담한 미래가 나로서는 그저 혼란스러웠다.
명절 전날이었다. 나는 외갓집에 엄마 심부름을 갔다. 마당을 들어서며 인기척을 내려 하는데 열린 창으로 어른들의 이야기가 새어 나왔다. 내 이름이 거론되고 완전히 눈이 멀면 어쩌냐는 걱정이 이어졌다. 그리고 누군가 읍내 침쟁이 남봉사 얘기를 꺼냈다. 그는 용한 침쟁이로 소문이 나 가정을 이루고 생계를 책임지고 산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혼란했던 마음을 정했다.
소리 나지 않게 마당을 되돌아 나왔다. 속으로 울트라맨을 불렀다. 조금씩 걸음에 속도를 높이며 입으로 울트라맨을 노래했다. 손으로 뺨을 훔치며 비명처럼 울트라맨을 외쳤다. 그때였다. 절망과 울분이 내 안에서 깨져 나가며 굳건한 의지 하나가 자리 잡았다. 결코 표백제 냄새 밴 된장국이나 받아먹는 미래를 살지 않으리라. 그날 엄마에게 장애인학교로 떠나겠다고 통보했다. 어떤 기술이라도 배워 내 밥벌이를 하고 살겠노라 말했다. <시리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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